洪準亨 < 서울대 공법학.베를린자유大 교수 > 후계자를 둘러싼 권력투쟁은 마피아 영화의 가장 빈번한 소재다. 세자책봉 등 권력계승을 둘러싼 족벌,권문 사이의 암투를 단골메뉴로 삼기는 우리나라 사극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독재체제는 숙명적으로 권력승계의 위기에 직면할 개연성을 안고 있다. 역사상 독재자들의 사후에 권력승계의 위기를 겪는 경우가 많았다. 스탈린 브레즈네프 사후의 구소련이나 모택동 사후 중국이 겪었던 위기,가깝게는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우리가 겪었던 격변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독재체제에 있었던 숱한 나라들이 권력승계의 위기를 겪었다. 이들은 대부분 정규적인 권력승계 장치를 결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화적인 권력승계를 위한 준비가 미흡했고,독재자가 사라진 후 권력공백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것이다. 권력승계 장치가 제도화돼 있다면 이미 독재자의 권력이 제한돼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1965년 '집단행동의 논리'란 저서를 발표해 정치경제학 정책학 분야에 불후의 족적을 남긴 올슨 (Mancur Olson)이 4년전 작고하는 그 순간까지 '나라의 번영을 위해 어떤 정부가 필요한가'라는 문제와 씨름하면서 남긴 통찰은 의미심장하다. 그의 사후에 출간된 '권력과 번영'이란 책에서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장증진적 정부(market-augmenting government)'가 필요하며,영속적인 민주주의 또는 대의정부와 경제 진보에 중요한 재산권과 계약자유 사이에는 가장 깊고도 결정적인 상관성이 있다고 역설했다. 많은 나라들이 가난을 면치 못했던 것은 인적 자원을 포함한 자원이나 자본·기술이 결핍돼서가 아니라,경제 번영을 가능케 할 정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역사적으로 번영을 누린 많은 나라들은 법적으로 안정된 권력승계 장치를 보유한 민주정부가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를 보장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한 나라들이라는 그의 지적은 대통령선거가 임박해서도 여전히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우리 정치상황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민주주의에 헌신했다고 자임하는 김대중 대통령조차 과거 독재정권과 다를 바 없이 '레임덕은 없다'며 후계문제를 최대한 미루다가 정권말 혼란을 자초하고 말았다. 물론 국정수행에 혼선을 초래한다느니,후계 논란으로 정치적 소모가 크다느니,너무 일찍 후계자를 내세우면 갖은 상처를 입고 결국 낙마하고 만다느니,적절한 시점에 당의 의사를 모아 후보를 선출하면 된다는 등 변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적절한 시점에 민주적인 제도를 통해 후보를 선출하겠다는 진지한 노력은, 그나마 말기에 반짝 국민적 관심을 불러 모은 국민경선제 말고는,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만일 민주적 과정을 통해 선출된 후계자라면 그는 의당,설사 다소간 상처를 입더라도 혹독한 정치적 검증과정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처럼 경선을 통해,그리고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승인 하에 후보를 선출하고 나서 여론조사 결과 지지도가 하락하자,당선가능성이란 우격다짐의 논리에 의존한 신당창당론을 내세워 번복하거나,오로지 상대 후보의 낙선을 위한 깎아내리기에 전념하다가 국정을 마비상태로 몰아가는 일부 집권세력의 황폐한 정치행태도 멀리는 바로 그런 독선적 기회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엄하다. 경선으로 선출된 자당 후보를 중심으로 단결해 선거승리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정파간 이해관계와 정계개편론 등을 전제로 정략적 기동으로 일관한 정상배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급조한 정당이라면 싸우기도 전에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누구든 차기정권을 획득한 세력은 자체적으로 권력승계의 절차와 일정을 미리 제도화·가시화해 권력의 지속가능성을 미리 최적화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미리 충분한 검토와 토론,민주적 의사결정을 거쳐 후계자 선출을 위한 합리적 제도를 도입,정비해야 할 것이다. 법적으로 안정된 권력승계 장치를 지닌 지속가능한 민주주의가 경제번영의 토대라는 통찰이 새삼 아쉬운 시점이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