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야? 디지털이오. 뭐? 돼지털?" 디지털을 돼지털로 잘못 알아 듣는 할머니가 출연하는 TV 광고를 기억할 것이다. 존경받아야 할 노인이 시대의 유물로 취급돼 TV 광고에서 희화화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그들을 오히려 안쓰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세계엔 애당초 디지털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돼지털 세상이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우리 50대에게도 그런 행복한 날들이 있었다. 주판 하나로 세상의 모든 숫자를 다 주무르고, 수북이 쌓인 결재 서류가 자신의 권위인 양 으시대던 시절, 밥그릇 수에 비례해서 대우를 받던 그런 시절이었다. 우린 그 시절을 아날로그 시대라고 했다. 곧 세상이 바뀌었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어 제3의 혁명이 일어났다. 디지털 혁명이라 했다. 디지털이란 신종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온 세상을 뒤집어 놓은 혁명이었다. 우리같은 아날로그 세대에겐 이 신종 바이러스는 가히 치명적이었다. 내성을 키울 시간적 여유가 없이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앉아서 당할 수 만은 없다. 그러기 위해 디지털에 대한 내성을 키워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 남아 디지털 세계에서 또 다른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 비록 손이 굳어 '엄지족'이 될 수 없고,도착한 e메일만 겨우 열어 보는 컴맹이라 할지라도 결코 디지털에 대한 도전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제 디지털은 존재(Being)를 넘어 생활(Doing)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의 마지막 세대라 해서 절망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디지털 시대의 첫 세대로 기억되고 싶다. 진정한 디지털의 미래는 아날로그의 세계를 통해서 발전돼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MIT 미디어 랩 연구소장인 니콜러스 네그로폰테의 지적을 우리 50대는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 35세부터 55세의 사람들은 고민에 빠져 있다. 이들은 아날로그 세대이면서 20대의 디지털 세대를 이끌고 의사 결정을 주도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을 돼지털로 우기는 50대가 될까 두렵기만 하다. 할머니 같은 행복이었다. 돼지털 빗자루를 타고 해리포터마냥 종횡무진 세상을 누볐던 시절이었다. 할머니마냥 돼지털 같은 여생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우리 50대에겐 아직 할 일이 많다. 살아야 했다. 감미로운 음악을 아내에게 보내려는 꿈을 꾸고 있는 한, 향긋한 문자 메시지를 딸에게 날리고, 무한히 넓은 지식의 바다를 젊은 직원들과 함께 항해하려는 희망을 갖고 있는 한, 우리는 디지털을 포기할 수 없다. < shhan@sutto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