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 스캔들로 얼룩진 미국 월가에선 요즘 역사가 오래된 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미국에서 1백50년이상 같은 이름을 사용하면서 영속성을 유지한 기업은 10여개에 지나지 않는다. 창립 2백주년을 맞아 이달초 서울에서 기업과 과학의 발전사를 주제로 한 사진전을 개최했던 듀폰도 그런 기업 가운데 하나다. 세계 70개국에서 1천8백여종의 화학제품을 생산,2백47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세계최대의 종합화학업체로 우뚝 선 듀폰의 역사는 프랑스의 귀족인 엘테르 듀폰이 프랑스 혁명의 혼란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1802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조그만 화학공장을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미국의 남북전쟁과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굴지의 화약회사로 발돋움했고,1938년에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섬유인 나일론을 개발해 섬유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실크를 대체할 섬유 개발에 투입한 연구진이 2백30명이라고 하니 일찍부터 연구개발에 대한 안목이 대단했던 셈이다. 2백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대공황을 맞는 등 역경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기업으론 처음으로 1921년 사업부제 조직을 채택하는가 하면 끊임없는 구조조정과 수익원 다변화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듀폰의 기업연령 2백년은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기업 최대의 덕목이랄 수 있는 영속성이란 측면에서도 대단한 일이다. 일본 최대의 재벌인 미쓰이가 1백26년,2위인 미쓰비시가 1백17년,우리나라에선 두산이 1백6년,삼성이 64년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한국기업의 평균적인 수명은 30년 정도이고,60년대에 1백대 기업에 속했으나 90년대까지 1백대 기업에 남은 기업은 16개 밖에 안된다는 통계를 보면 기업의 생존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듀폰도 그렇지만 장수기업의 특징은 환경변화에 유연하고,자산보다 사람과 창의력을 중시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경영풍토가 확산돼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받는 장수기업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허정구 논설위원 hu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