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 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사장 > 해방 당시 남북한을 합친 학사급 이상 과학연구인력은 1백명이 안되었다. 박사는 단 2명. 2001년말 현재 남쪽만도 박사 4만7천명, 석사 5만8천명, 학사 6만4천명, 기타 합쳐 18만명이다. 50년 전에 비해 1천8백배가 늘었다. 거기다 매년 배출하는 과학엔지니어링 인력은 7천만 인구의 과학선진국 옛 서독보다 많은 12만명에 이른다. 사회인문분야까지 포함된 것이나 인구수에 비례한 박사학위 소지자는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뿐더러 국내외 한국두뇌 중에선 노벨상도 기대할 만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공계 위기인가. 선진국의 경우 두 가지 이유로 이공계 지원이 줄어든다. 첫째는 소득 증가와 사회보장의 충실화로 '어려운 공부'를 기피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냉전후 군수, 군사 기술분야 수요의 급격한 축소로 인한 것이다. 냉정히 따지면 한국의 경우는그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소득 1만달러도 안되고 휴전선 아래 4강의 틈바구니에서 '풍요'는 커녕 '생존'의 기본과제도 풀지 못하고 있는 우리가 벌써부터 이공계 기피라니. 문제는 기초와 시스템이 잘못되었고 문제의 진실에 대한 진단이 잘못된 것이다. 확실히 상황은 학사 출신은 물론이고 박사 취득자도 취직이 어렵다. 그런데 대학의 교수 1인당 학생수는 40명이 넘는다. 미국 명문대학의 5~6명 수준은 꿈이라 하더라도 일본수준의 20명으로, 즉 교수인력을 배로만 늘리려 해도 제대로 된 우수교수인력은 오히려 부족하다. 독일보다 많은 과학기술인력을 배출하는데 기업에선 쓸만한 인재를 못 구해 야단이다. 핵심은 대학이나 연구소에 걸맞은, 즉 수월성에 걸맞은 두뇌를 확보하지 못했거나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수요로하는 인력을 키우지 못했거나 키울 만한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수월성과 특성이 확실한 대학이나 연구소를 키우려면 고급두뇌는 넘치는 것이 아니라 모자란다. 취직이 안되어 이공계 기피증이 일어나는 것은 과학기술자의 '대접' '대우'의 문제도 있으나 그보다는 '수월성'이 없는 인력이 넘치기 때문이다. 1차적으로 대학수를 반 이상 줄이고 우수 교수인력은 배 이상 늘려야 한다. 시장에만 맡기지 말고 나라가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과학기술과 IT관련 숫자들에서 세계적 자랑거리가 많다. 그러나 거품도 많다. 일반 초.중고등학교의 실험 실습실을 실제로 가서 보라. 실험 실습실의 크기, 기구, 재료, 교사 확보, 너무나 처참하다. 그러고도 과학올림피아드와 기능올림픽의 메달수에 매달리는 것은 국가적 위선이다. 집단이기주의에 흔들리지 말고 과학기술강국으로 가는 기초와 시스템 만들기에 충실한 것, 그것이 나라가 할 일이다. 기초만 튼튼히 하면 한국인이 전세계 천재들과 겨루어 부족함이 없다는 것은 이미 기업, 예술, 스포츠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다. 과학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