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월 정근모 뉴욕 브루클린공대 교수는 미국 국제개발처(AID) 처장인 존 A 해너 박사를 만나기 위해 국무성을 찾았다. 해너 처장은 정 교수와 끈끈한 인연을 갖고 있었다. 그는 60년대 초 미시간대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정 교수의 유학 요청을 받아들여 이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은사이기도 했다. 해너 처장은 이 자리에서 "AID의 개도국 원조 정책이 교육투자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하면서 "한국엔 어떤 방식의 교육원조가 필요하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정 교수는 "이공계 특수대학원"이라고 답했다. "보고서를 만들어 보라"는 해너 처장의 권유를에 정 교수는 나름대로 이공계 대학원 구상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후 서울대행정대학원에서 공부할 때인 59년 실무훈련을 위해 원자력원 김법린 원장의 비서를 지내면서 과학 기술정책에 눈을 떴다. MIT 교수로 재직중이던 66년과 67년에는 하버드대에서 과학정책을 따로 공부하기도 했다. 해너 처장은 정 교수의 보고서를 받아 보고는 곧 바로 담당자에게 한국 정부측과 접촉토록 했다. 정 교수의 보고서를 토대로 미국측이 경제기획원에 이공계 특수대학원 설립을 제안한 것이다. 이후 문교부와 교수들의 반발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70년 4월6일 열린 월례 경제동향보고회에서 과학원 설립안이 확정됐다. 이날 정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의 바로 옆자리에서 회의를 지켜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