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겐 뢰플러 <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 사장 > 한국은 월드컵을 매우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조직적이고 안정적이면서 평화적으로 스포츠 축제를 개최한 국가'로 세계의 인정을 받았고,한국 국가대표팀은 훌륭한 실력을 보여주었다. 한국 언론과 정부는 이번 월드컵을 단순한 스포츠 축제 이상으로 승화시켰다. 이것이 외부 분석가들에게는 과장돼 보일 수도 있다. 현대의 기업들은 수천명의 직원들을 고용하고 하이테크 시설에 상당한 투자를 한다. 반면 축구는 어떤 중요한 기술 장비 없이 11명의 선수들로 구성된 한 팀이 승리를 위해 뛴다. 선수들의 신체 상태와 기술 우위가 승리를 결정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승리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은 경기를 하는 선수들의 팀워크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축구를 현대기업경영에 적용시킬 수 있다. 닷컴기업들의 거품이 사라졌지만 세계는 정보화사회로 나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모두가 시장에서 필요한 생산장비를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예를 들어 모든 축구팀들이 가장 좋은 축구화를 쉽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정보화시대에 공장과 같은 하드웨어의 중요성은 점점 더 감소한다. 하드웨어는 더 이상 기업들을 차별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다. 기업이 최고의 인재를 채용해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고,그리고 그들이 하나의 팀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기업은 성공하는 것이다. 축구와 현대기업 사이엔 이런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히딩크의 성공은 연공서열 지연 학연 같은 한국의 전통적 가치나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실력위주로 선수를 선발한 덕분이다. 그런 히딩크 방식이 한국의 대중으로부터 인정받고 변화의 청사진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변화를 수용하려는 한국인의 강점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전통 유교의 가치관과 관행을 거스르면서 기꺼이 변화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 수용에 적극적인 나라는 많지 않다. 대부분 국가는 변하는 것에 대해 자국의 문화와 모순된다는 이유로,심지어는 타 국가와 문화를 지배하려는 제국주의적 수단이라는 이유로 외국의 행동양식을 거부한다. 한국인들은 스스로의 국민성에 강한 성취욕, 열심, 성실, 그리고 인내와 같은 우월한 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뛰어난 업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국인들은 타인의 장점을 받아들여 한 단계 높은 발전을 이루어 낸다. 이렇게 적응하는 능력은 오늘날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한국은 제철 조선, 그리고 반도체 같은 제조업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세계 선두에 올라섰다. 위의 세 가지 산업은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자본집약 산업이라는 것이고 둘째,질서정연한 생산과정이 요구된다는 것이며 셋째,강한 상의하달식의 경영방식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공공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생활에서의 규율,권위에 대한 복종,개인의 목표를 집단의 목표에 종속시키는 등의 유교가치는 자본집약산업의 요건에 이상적으로 잘 맞았고,경제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고 있다. 경제력은 고부가가치,미디어,엔터테인먼트,그리고 소비재산업에 점점 더 의존한다. 정보화시대에 하드웨어의 중요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이제 성공의 새로운 요소는 혁신성 창의성 진취성으로 대표된다. 인재를 끌어오고 채용하고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기업은 융통성 있고 전적으로 성과에 주안점을 두는 새로운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더 이상 서열 학연 또는 지연에 좌우돼서는 안된다. 만약 과거에 많은 도움이 됐던 원로들로 인해 회사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가치파괴를 일삼게 된다면,그것은 오히려 경쟁에서 불리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한국은 월드컵의 성공을 맹목적으로 국내 상황이 최상의 수준이라는 증거로 삼기보다는 구습(舊習)을 변화시켜 발전하려는 원동력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필자로 하여금 한국이 제조업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서비스와 소프트웨어에서도 경쟁 우위를 차지해 다각화에 성공하는 경제로 변화해 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