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여러분들,양심에 부끄럽지 않습니까."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가 열린 6일 아침 대표실. 김영일 사무총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어떻게 전과 6범인 김대업씨 얘기만 일방적으로 보도할 수 있습니까." 김 총장의 언론인 양심 운운은 몇분간 계속됐다. 서청원 대표도 "민주당과 청와대의 배후공작 부분은 한줄도 보도되지 않았다"며 김 총장을 거들었다. 당이 대처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데스크에 꼭 전해달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회의 내용을 취재하던 기자들은 김 총장과 서 대표의 훈시성 발언에 아연실색했다. 즉각 취재진의 항의가 빗발쳤고,김 총장과 서 대표는 "8·8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라고 궁색하게 변명했다. 의정(醫政) 부사관 출신 김대업씨가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장남의 병역비리 의혹을 연일 터뜨리고 나서자 한나라당 지도부의 정서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5년전 악몽이 되살아날 것을 우려하는 한나라당이 김씨를 표적으로 삼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김씨의 병역사기 전력과 성폭행 전과를 집중 부각시키며 김씨 증언의 신빙성을 문제삼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김씨의 이같은 파렴치한 행태를 크게 다루지 않는 것이 한나라당측의 불만인 것이다. 한나라당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선거때마다 흑색선전의 망령에 시달려온 피해의식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병역비리 의혹은 여전히 미궁속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 의혹은 이 후보의 장남이 병역면제를 받은데서 출발한다. 더구나 대통령 후보의 검증과 관련한 기사를 다루는 것은 공정성을 생명으로 여기는 언론의 몫이다. 그런데도 마치 취재진을 당보(黨報) 기자 대하듯 하는 태도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언론의 독립성'을 강조하던 한나라당과는 전혀 딴판이다. '탄핵''정권퇴진'등 한나라당 지도부의 아슬아슬한 발언들을 아침마다 접하는 기자 역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원내 제1당으로서 부끄럽지 않습니까." 김병일 정치부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