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2월말 벤처기업의 옥석(玉石)을 가리기 위해 '벤처기업 건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은 산업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이 '무늬만 벤처'인 기업을 가려내 과감히 벤처자격을 박탈시켜 한시바삐 건전화를 일궈내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에 따라 중기청은 지난 4월부터 벤처기업 1만1백82개사를 대상으로 혁신능력 평가에 나섰다.


이 평가결과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중기청에 따르면 평가에 응답한 8천8백36개사 가운데 4백21개사가 낙제점인 50점이하를 받았다.


더 큰 문제는 1천3백46개사가 아예 평가조사에 불응했다는 점이다.


조사에 응하지 않은 업체들은 평가를 받아 탈락당하기보다 조사를 기피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 그랬을 것이다.


벤처의 옥석을 가린다는 측면에서 볼 때 평가에 불응한 업체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벤처자격을 박탈하는 게 건전화 방안을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중기청은 이번 평가결과를 놓고 무척이나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낙제기업과 조사불응기업이 1천7백67개사에 이르자 이를 한꺼번에 탈락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 10월말까지 이들에 대한 조치를 미뤘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패스21 사건 등과 같은 벤처의 도덕적 해이를 극복하고 벤처기업을 선진국형 기업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무늬만 벤처'인 기업은 즉시 퇴출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의 이같은 요구에도 불구,중기청 관계자는 "50점미만인 기업은 지도대상기업으로 분류해 특별관리하되 경영컨설팅 등을 통해 혁신능력을 보완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조사불응기업에 대해서는 오는 10월말까지 혁신능력평가를 종용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서슬 퍼렇게 내놨던 벤처기업건전화 방안이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 셈이다.


사실 정부로서도 가뜩이나 벤처기업수가 지난해말에 비해 1천2백여개사나 줄어들고 있는데 강제로 자격을 박탈시키면 엎친데 덮친격이 될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벤처건전화 정책이 갈수록 느슨해진다면 옥(玉)에 해당하는 기업들까지 신뢰를 회복할 기회를 놓치고 말지 모른다.


이치구 중소기업전문기자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