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시골에 가면 시집온 여자들을 '박 실''이 집'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부인의 성(姓)과 이름은 묻혀지고 단순히 남편의 성을 따라 이렇게 불리는 것이다. 이는 뿌리 깊은 유교적 가부장제도의 잔재임은 물론이다. 여성을 비하하는 속담이 많고 딸을 낳은 죄로 눈물의 시집살이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불과 얼마전만 해도 여자들은 그저 집안살림이나 챙기고 시댁어른들의 말씀을 좇는 인종지덕(忍從之德)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름 따윈 아예 무시됐다. 처녀때는 '큰 아씨''작은 아씨'로 통용됐고,하층민들은 기녀 무녀 따라마님(마님을 따라 다니는 여자) 통지기(물통을 지고 다니는 여자) 등 특수한 명칭으로 불렸다. 개화기 이후 여성은 쓰개치마를 벗어던지고 신교육을 받기 시작했으나,그나마 '여권'이라는 의식이 싹튼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최근 들어서는 남성중심사회에 반발하는 '딸들의 소송'도 많다. 종중 땅 매각대금을 남성들 위주로 나누어 갖는 것은 부당하다고 법에 호소하고 있으며 또 이혼한 여성호적에도 자녀들을 올릴 수 있는 호주제 개정 주장도 거세다. 2년전에는 페미니스트들이 유교문화의 상징인 종묘에서 여성의 나체를 패러디한 '여성해방'퍼포먼스를 펼치려다 성균관 유림들의 반발로 무산되기도 했다. 급기야 며칠전에는 전북 고창에서 박(朴)씨 성을 가진 여성 1백50여명이 모여 전국 처음으로 여성종친회를 결성했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터부시돼 왔던 금녀의 벽에 도전한 셈이다. 이 여성종친회는 박혁거세를 시조로 모시는 경주의 신라오릉보존회에 등록해 공개적으로 활동한다는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많은 얘기가 들린다. "아무리 남녀평등 사회라지만 여성이 결혼을 하면 남편의 족보를 따라가는 게 현실 아니냐"고 반문한다. 어쨌든 여성종친회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호주 및 상속을 규정한 민법개정 등의 선결과제가 많아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