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전화를 해서는 대뜸 삼계탕이라도 먹었느냐고 물었다. 웬 삼계탕? 반문했더니 초복이잖아요 했다. 삼계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거의 먹어본 적이 없다 했더니 후배가 한심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복날에 삼계탕을 즐겨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보신탕을 먹어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개고기를,그것도 얼추 반 마리는 됨직한 개고기를 먹어본 적은 있다. 아홉 살 여름 무렵 어머니가 조청을 만들었다며 큼지막한 동이를 웬일로 대문 밖에서 들고 왔다. 동이 안엔 검은 윤기가 흐르는 되직한 물엿이 담겨 있었다. 그걸 한 숟가락 떠낸 어머니가 콩가루에 굴려 경단을 만들어 주셨다. 입이 궁금하던 참에 냉큼 받아 먹었는데 정말 맛났다. 흐뭇한 표정의 어머니가 네 보약이니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하셨다. 그 뒤 혼자서 광엘 드나들며 경단을 만들 새도 없이 엿을 떠먹곤 했다. 한 살 밑인 심술꾸러기 남동생은 누나 약이라는 어머니의 종주먹 때문이었는지 내가 광에 들어가면 따라들어와 한 입만 달라고 졸라대기 일쑤였다. 가끔 녀석한테 선심을 쓰면서 먹는 동안 엿 동이가 반쯤 줄었다. 어느 해질녘이었다. 광에서 엿을 떠먹고 있는데 쳐들어온 동생이 양양한 목소리로 "야, 너 그거 맛있냐?" 하는게 아닌가. 대꾸를 안하자 약이 바짝 올랐든지 녀석이 갑자기 개 짖는 소리를 내더니 너 이제 개가 될 거다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까불면 엄마한테 이른다고 협박을 하고 광을 나오려는데 뒤에서 녀석이 "바보야,네가 먹은 그거 정곤이네 누렁이인 줄 몰랐지? 혼자 많이 먹어라"하고는 달아나 버렸다. 정곤이네 누렁이. 몸집이 송아지만 하면서도 순해 빠져 아무나 보고 꼬리를 흔들던 똥개가 어떻게 엿으로 둔갑했는지는 모르지만 동생 말이 사실인 건 분명했다. 정곤은 녀석 친구이고 허구한날 붙어 사니까. 그날 밤 녀석은 엄마한테 죽지 않을 만큼 맞았고 나는 그때까지 계속 울며 구역질을 해대고 있었다. 토하고 토하다가 밤에는 열이 펄펄 나기까지 했던 그 사건 이전에 고기를 입에 대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뒤로도 오래도록 고기 맛있는 걸 모르고 살았다. 하지만 크게 아픈 적이 없었을 뿐더러 늘 과체중을 유지하고 살아온 걸 보면 그게 보약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누렁이의 명복을 30년이나 지난 지금 빌어도 효력이 있을까 모르겠다. < juhuy9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