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19개월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지난주 후반 1,200원을 지지하며 반등 조정됐던 흐름은 끊어진 채 환율은 장중 꾸준한 하락 궤도를 그렸다. 한동안 진정기미를 보였던 미국 달러화 약세 추세가 재개되며 달러/엔 환율은 지난주 말 120엔대에서 이날 118엔대로 폭락했다. 머크사의 회계부정 연루의혹으로 달러화는 반등력을 상실했다. 국내 시장 참가자들은 지난주 후반 반등에 따른 달러매수초과(롱)상태를 적극 처분했고 지난주 후반 축적된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순매수분이 공급됐다. 역외세력도 적극적으로 매도에 나서 공급우위의 장세가 유지됐다. 정부의 구두개입이 있었고 국책은행의 매수세가 근근히 아래쪽을 지탱했으나 '하락'이라는 시장의 대세를 막기엔 힘이 부족했다. 시장은 단기 목표로 1,180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가운데 시장의 큰 그림은 달러화 약세 흐름과 궤를 같이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지난 금요일보다 13.50원 내린 1,191.40원에 마감, 종가 기준으로 지난 2000년 12월 12일 1,190.10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가리켰다. 장중 고점은 1,200.40원, 저점은 1,191.20원으로 지난 2000년 12월 12일 장중 저점인 1,183.50원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루 환율변동폭은 9.20원을 가리켰다. ◆ 1,180원대 바라본다 = 반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달러화 약세 재개는 1,190원도 지지선으로서의 역할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머크라는 돌발 악재와 대면한 뉴욕 시장이 어떻게 반등할 지가 최대 관심사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회계부정 의혹으로 달러/엔이 밀리고 달러매수초과(롱)상태를 아침부터 처분하는 움직임이 쭉 이어졌다"며 "역외에서도 모건스탠리 등에서 물량이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고 정부 개입도 달러화가 약세로 가니까 무의미해 속절없이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달러/엔의 회복여부가 관건이지만 뉴욕 증시가 다시 무너지면 달러/엔은 115∼116엔까지 단기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며 "일단 달러/원도 1,180원을 바라보면서 내일은 1,185∼1,187원까지 하락이 가능해 보이고 1,200원은 저항선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계은행의 다른 딜러는 "원-엔 비율이 10대1 이상에서 맞춰진 채로 달러/엔에 연동한 흐름이었으며 당국도 엔-원 비율 때문에 적극 개입하지 못한 것 같다"며 "역내 수급은 어느정도 균형이었으나 역외에서 적극 팔았다"고 전했다. 그는 또 "달러/엔이 전 저점인 118.40엔선이 막히느냐 뚫고 내리느냐에 따라 1,190원 지지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라며 "오늘 낙폭이 큰 탓에 추가 하락을 제한받을 수도 있지만 내일 거래범위는 1,188∼1,195원으로 일단 예상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 개입 명분 없는 정부 = 정부가 지난주 후반 3차례에 걸쳐 구두개입에 나선 데 이어 이날도 환율 급락을 막기위한 구두개입에 나섰다. 권태신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오전중 "엔화동향과 연계된 지나친 환율하락 심리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는 환율수준이 중장기적으로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개입도 달러/엔의 급락으로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환율은 맥없이 주저앉았으며 추가 개입에 의한 반등시 매도를 꾀하는 시장 참가자들의 인식이 한층 강화됐다.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정부가 실질적으로 물량을 흡수하는 개입보다 엄포성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달러/엔 바닥, 115엔이 '대세' = 지난주 약세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던 미국 달러화가 다시 하락 트렌드를 재개했다. 지난주 말 뉴욕 증시 급등으로 조정된 달러화는 이날 미국 제2위 제약회사 머크가 회계부정 혐의로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소송을 제기당했다는 보도로 달러매도 압력이 커졌다. 지난주 말 뉴욕 증시 급등으로 120.39엔으로 마감한 달러/엔 환율은 120엔, 119엔을 차례로 붕괴시키며 118엔대까지 추락했다. 시오카와 재무상이 지난주 말 제4차 ASEM 재무장관회의에서 "달러/엔이 115엔까지 하락이 가능하다"며 "그 수준까지 도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발언, 하락 속도가 빠르지 않다면 시장개입에 나서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 달러/엔의 급락을 부추겼다. 일본 재무성 관계자들이 잇달아 엔 강세 진화작업을 펼쳤으나 개입의지가 후퇴한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였으며 머크사의 회계부정 의혹이 달러매도 공세에 힘을 실은 셈. 미국 기업의 범죄적 회계처리 방식에 대한 의혹이 달러화의 약세를 재개시키는 양상. 달러/엔은 오후 5시 현재 118.82엔이며 엔/원 환율은 엔화 강세의 속도에 비해 원화가 더딘 탓에 지난주 100엔당 1,000원대로 올라서 같은 시각 1,002원선을 가리키고 있다. 국내 증시의 외국인은 거래서와 코스닥시장에서 각각 3,039억원, 183억원의 매수우위를 기록했다. 사흘 내리 1,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순매수로 달러공급 요인이 축적돼 환율 하락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 환율 움직임 및 기타지표 = 지난 금요일보다 5.90원 낮은 1,199.00원에 한 주를 연 환율은 9시 33분경 이날 고점인 1,200.40원까지 소폭 반등했으나 달러/엔 낙폭 확대와 손절매도로 9시 48분경 1,196.50원까지 급락했다. 이후 일부 국책은행 매수세와 재경부의 구두개입 등으로 환율은 대체로 1,197원선의 미미한 반등수준에서 한동안 맴돌다가 오전장 막판에 다다라 추가 하락, 11시 53분경 1,195.90원까지 미끄러진 뒤 1,196.10원에 오전장을 마감했다. 오전 마감가보다 0.10원 낮은 1,196.00원에 오후장을 연 환율은 달러/엔의 하락과 역내외 매도세로 반등다운 반등도 하지 못한 채 4시 14분경 1,191.90원까지 흘러내렸다. 이후 저가매수 등으로 4시 17분경 1,193.00원까지 약간 되오른 환율은 재차 미끄러지며 4시 27분경 1,191.20원까지 저점을 낮췄다. 이날 현물 거래량은 서울외국환중개를 통해 13억30만달러, 한국자금중개를 통해 9억6,320만달러를 기록했으며 스왑은 각각 2억0만달러, 3억8,650만달러가 거래됐다. 9일 기준환율은 1,195.80원으로 고시된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