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은 미국이 소위 쌍둥이 적자로 지칭되는 재정적자 무역적자로 인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다. 사회 전체가 무기력증에 빠져들자 급기야 의회가 나서 국산품애용의 불씨를 댕겼는데 이 운동은 행정부·업계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당시 등장한 것이 성조기였다. 업계가 자사 제품에 성조기를 새겨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종전에도 성조기패션은 있었으나 국산품애용운동으로 패션이 보다 다양화되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탱크톱이나 바지 넥타이 등의 의류는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에 성조기문장을 새겨 넣었다. 9·11테러 이후에도 성조기 패션은 붐을 타고 있다고 한다. 애국심 차원의 미국 경우와는 다르지만 유럽에서도 자국의 국기를 본뜬 패션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 영국은 국기인 '유니언 잭'이 젊음을 상징한다는 점에 착안,유니언 잭을 로고로 사용한 상품들을 출시하고 있으며,프랑스 역시 청·홍·백의 삼색기를 입체적으로 도안한 제품들이 사랑 받고 있다. 그동안 우리 태극기는 권위의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항상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저 경축일에나 게양하는 장롱속의 소품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 태극기가 월드컵을 계기로 저 높은 곳에서 내려와 우리 생활속에 친근하게 다가섰다. 월드컵 기간 중 길거리 응원단이 보여준 두건 치마 망토 등의 '태극기패션'덕임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더 나아가 이제는 태극기를 상품에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활짝 열렸다. 태극기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정부는 '태극기관리규정'을 바꿀 모양이다. 현 규정대로라면 태극기로 티셔츠나 치마 등을 만드는 것은 국기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로 처벌 받게 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론을 수렴하고 있지만 태극기를 자르거나 속옷으로 만드는 등의 상식을 벗어난 행위 이외에는 모두 허용토록 할 방침인 것으로 보인다. 태극문양은 빨강과 파랑의 대비가 강렬해 상품화의 문제가 있다고는 하나,성조기나 유니언 잭처럼 얼마든지 훌륭한 디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