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어느 선수가 무슨 상을 받을 것인가도 큰 관심거리다. '기적''돌풍' 등 세계 매스컴의 화려한 찬사를 받으며 4강진입에 성공한 우리 선수들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는데,그중에서도 22일 스페인전에서 페널티 킥을 막아내 한국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거미손' 이운재가 강력한 '야신상'후보로 부상했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에게 주어지는 이 상은 94년 미국 월드컵대회 때부터 도입돼 지난 대회에서는 프랑스의 바르테즈가 그 영광을 안았다. 전설적 골키퍼였던 레프 야신(Lev Yashin·1929∼90)은 구 소련의 선수였다. 그는 71년 은퇴할 때까지 20년간의 선수생활 동안 2백70여 경기에서 1백50차례의 페널티킥을 막아내고,국가대표로 출전한 A매치 78경기에서는 70골만 허용해 경기당 1골에도 못 미치는 경이적인 실점률을 기록했다. 야신의 명성은 그가 고별경기를 한 레닌운동장의 열기로 짐작할 수 있다. 세계 각국에서 달려온 열성 팬들로 경기장은 장사진을 이루었고,내로라하는 유명 선수들이 이 한 경기를 보기 위해 모스크바로 득달같이 달려왔다. 지금도 후배 골키퍼들은 야신이 생전에 입었던 검은 유니폼을 즐겨 입을 정도라고 한다. 야신은 소련 최고의 영예인 레닌훈장을 받았고 은퇴 후에는 체육장관으로 스포츠정책을 수립하기도 했다. 야신의 화려한 현역 시절과는 달리 무명 시절의 그림자는 길고도 짙었다. 13살 어린 나이에 공장에 다니면서 끼니를 때워야 했고,선수 시절에도 선배들에 가려 물 심부름이나 하면서 오랫동안 벤치만을 지켜야 했다. 이운재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간염으로 병원신세를 져야 했고,수원 삼성의 유니폼을 입었지만 선배가 버티는 통에 수문장의 자리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프랑스월드컵 때는 김병지에게 밀려 출전선수 명단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성실한 노력은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었고 이때부터 행운은 시작됐다. 이운재가 노리는 야신상의 최대 라이벌은 독일의 올리버 칸이어서 25일의 한-독 4강전은 이래저래 관심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ba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