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와 8강을 겨루는 날이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해보기 어려웠던 16강 대열에 낀 것을 필두로 이제는 8강,아니 4강까지도 가능하다고 하니 국민 모두가 월드컵 축구경기에 미쳐볼 만도 하다. 월드컵경기에 넋을 잃고 있는 이런 국민들의 광기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의사표시이기에 그들의 견해에 대해 감정적으로 언짢은 표정을 지을 일만은 아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경기에 대한 열광 그 자체가 모두 정치적 목적으로 면밀하게 만들어진 정치권력의 책략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나라정치가 어려워지니까 그 타개책으로 운동경기를 악용한다고 보면 틀림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사적으로 정권 연장과 운동경기 사이의 관계를 조망하면 그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정치권력들은 나라가 뒤숭숭해서 국민들이 맥을 놓고 있을 때 흔히 국민을 요리하는 수단으로 빵과 원형경기장 정책을 꺼내 써먹곤 했었다. 빵과 경기장이라는 말은 원래 거의 망해 가던 로마제국 말기부터 나온 말이다. 로마 황제는 시민을 다독거리기 위해 먹거리와 볼거리를 매일같이 제공했다. 대전차 경기며,투기를 계속해서 열었다. 풍성한 볼거리로 마음이 즐거워진 시민들은 사회적 불만을 가라앉히며 운동경기 이야기로 하루하루를 소일했다. 이미 3천년 전 리디아 왕 아티스는 잇따른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구기경기를 매일같이 열었다. 국민들이 하루종일 경기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그들은 끼니조차 잊을 정도로 운동경기에 중독이 됐다. 이런 식의 통치술을 통해 아티스 왕은 18년간이나 더 왕권을 연장했었다. 지금의 월드컵 축구경기에 대한 우리 정치권력의 의지가 그 정도로 음흉한지 어떤지는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월드컵 경기에 대한 우리의 집착이 너무 병적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점만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 국민들은 월드컵 8강,혹은 4강에 대한 승리에 광기를 내뿜고 있기 때문이다. 저러다 좌절하면 상당수의 국민들이 '축구정신질환'에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부터 된다. 승리만을 염두에 두면 운동경기를 하나의 축제로 승화시켜 경기관람 그 자체를 제대로 즐기기가 쉽지 않다. 승리만을 노리면 스포츠맨십도 사라지고,축구경기 그 자체에 대한 즐거움도 소멸될 수밖에 없다. 일본사람들은 운동경기를 관람하면 선수들의 승부근성을 즐긴다. 매 경기마다 선수들은 승부수 그 자체를 하나의 묘미로 맛보려고 한다. 이에 비해 서양선수들은 승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경기는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이기는 게임을 많이 만들어 승률을 높이는 경기가 보기 좋은 경기다. 야구의 경우 제아무리 홈런을 잘치는 선수라고 하더라도 그의 타율은 기껏해야 3할대에 머물 뿐이다. 이 타율을 높이기 위해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모습은 한국축구팀에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포르투갈의 축구는 내일 또다시 해가 뜨듯 뜰 것"이라고 말하며 자리를 뜬 포르투갈 축구감독의 말에서도 잘 드러난 바 있다. 2명의 선수에게 퇴장을 명한 심판의 판정에 대한 심한 불쾌감을 억누르며,그 대신 포르투갈 축구팀의 승률을 높이겠다는 그의 스포츠맨십이 더 돋보였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저들의 스포츠맨십에 비해 우리는 경기에서 승리만을 노린다. 선수들은 그 어떤 경기든 이겨 이를 취하려고 하기에 우리들에겐 패배의 여백이 너무 좁다. 우리 국민 역시 지는 것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돼 있다. 그래서 지면 선수들은 곧바로 좌절하고,국민들의 응원은 난동으로 변해버리게 된다. 패하면 책임부터 그 누군가에게 전가시키는 난장판부터 치르곤 한다. 희생양을 만들어 분풀이부터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선수도 죽고,경기도 죽어버리게 된다. 이번에는 모두가 승패에 관계없이 느긋하게,정말로 여유있게 선수들의 멋있는 발놀림을 즐겨보자. joh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