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는 선거에도 시장경제의 원리가 냉엄하게 적용된다는 교훈을 줬다. 우리 민심은 신용없는 정당에 높은 값을 쳐주지 않았고 고를 만한 후보가 없는 선거판에 등을 돌렸다. 그 결과는 한나라당이 싹쓸이에 가까울 정도로 압승하고 민주당이 호남당으로 전락하는 참패로 나타났다. 투표율은 48.8%로 절반에도 못미치며 사상최저치를 나타냈다. 선거판에 대한 불신임에 다름아니다. 신용이 나빠 브랜드 이미지가 낮은 회사의 제품이 싸구려 취급받고 살 만한 상품이 없는 곳에 손님이 몰리지 않는 게 시장이다. 이 원리가 선거에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이를 정치적인 언어로 '유권자의 주인의식이 높아졌다'고 말할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못된다. 연일 터져나오는 게이트,김대중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의혹사건으로 민심을 화나게 만든 상황에서 과거 여당인 민주당에 유권자들이 너그럽기를 바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유권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후보를 내도 당선될까 말까하는 판에 자기들만이 좋아하는 '우물안 개구리식' 상향 공천을 하다보니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참패한 민주당 내부에서 지도부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것도 어색한 몸짓이 아니다. 책임정치를 해야 할 공당이라면 으레 거쳐야 할 과정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의 심각성은 투표율이 50%에도 못미치는 '선거의 위기' 상황에 있다. 특히 20,30대 젊은이들의 무관심은 도를 넘어선 듯하다. 월드컵 경기의 남은 표를 사기 위해 경기장 주변에 텐트를 치고 밤을 새는 열기와 비교하면 섬뜩할 정도로 대조적이다. 우리 젊은이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재미에만 탐닉하고 주권행사에는 무관심한가 하는 생각이 듬직도 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주인의식만 탓하는 것은 너무나 젊은 세대를 모르는 한가한 공론(空論)이다. 요즘 젊은이, 특히 20대는 '디지털 세대'다. '예스(Yes)'냐 '노(No)'냐의 이분법적 선택에 익숙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아직도 '마땅히 선택할 인물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택한다'는 '아날로그식 사고'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 누굴 찍을지 아리송한 사람들을 세워놓는 선거판과 젊은층은 갈수록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기성세대라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투표에 참여한 것은 아니다. 투표에 참여한 대부분의 유권자가 자신이 표를 던질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의 이름 정도만 기억하고 투표장으로 향했다. 광역의회의원과 기초의회의원의 경우 기호만 보고 표를 던진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이처럼 숱한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정치를 보는 눈은 예사롭지 않게 높아졌다. 그러한 유권자들에게 표심(票心)의 실체를 모르고 승리감에 도취돼 우쭐대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또 선거에서 패배한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전인수격 해결책으로 돌파하려 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정치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이기고 나면 오만해지기 시작한다. 때로는 유권자들을 가르치려 든다. 사회의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며 각종 개혁이란 포장으로 인기몰이를 한다. 그도 아니면 선심정책을 내놓는다. 유권자가 그들의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있다는 것도 모른채. 유권자는 침묵할 뿐이다. 다음 선거가 있을 때까지.정치지도자는 그것을 놓치고 어설픈 정치논리로 유권자들을 가르치려 들다가 엄청난 역풍(逆風)을 맞는다. 그 사례 가운데 하나가 6·13 지방선거다. soosu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