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 축구대회가 4천7백만 국민을 열광케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해 1월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 거스 히딩크씨를 영입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을 맡겼다. 그 동안 히딩크 감독은 국민들의 뜨거운 기대와 비난을 동시에 받아왔다. 그런데 지난 해 프랑스 체코와의 연이은 평가전에서 모두 0-5로 패해,'오대영 감독'이란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3월부터 8차례의 A매치 성적은 3승4무1패.특히 그 동안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생각됐던 스코틀랜드(4-1) 잉글랜드(1-1) 경기에서의 선전은 한국축구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게 했다. 10일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D조 2차전에서 우리는 미국과 1-1로 비겨 1승1무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14일 인천에서 벌어지는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한다.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 이른 감은 있지만,이에 대한 분석 가운데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요인의 하나는 강한 기초체력을 다진 훈련이라는 점이다. 그는 "월드컵이 몇달 남았는데 아직도 기초체력 훈련이냐"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왕복달리기,오래달리기,근육강화운동 등과 같은 체력 훈련을 강조했다. 아무리 기술이 좋은 선수라도 90분간 줄기차게 뛸 능력이 없으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기본원칙에 충실한 것이었다. 결과는 스코틀랜드·잉글랜드·프랑스 전 이후 "정말 예전의 한국축구가 맞느냐"는 반응으로 나타났다. 히딩크의 훈련방식은 기초는 소홀히 하고 성과만을 강조하는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러한 히딩크식 전략은 비단 축구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21세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 방향에 대해 시사하는 바 매우 크다. 과학기술을 축구에 비유한다면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기초과학이다. 기초체력 바탕 없이 기술과 전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듯이,기초과학의 기반없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과학기술의 지속적 혁신을 위한 국가간 경쟁은 이미 본격화됐다. 원천기술의 지속적인 배양과,이에 바탕을 둔 신속한 기술혁신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차별화된 경쟁우위 확보가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OECD가 "신경제 성장의 중요한 열쇠는 기초과학 투자를 통해 급속한 기술혁신을 흡수할 수 있는 과학적 능력을 배양하는 것에 있다"고 지적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하지만 선진 기술의 모방을 통한 성장 전략에 익숙한 우리의 경우 원천기술의 토대라 할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고,그 지식축적의 정도도 미약하다. 1981년부터 2000년까지 20년 간 우리나라가 SCI에 발표한 논문수는 영국이 2000년 한햇동안 발표한 논문수와 비슷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역시 해마다 늘고 있지만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미흡한 상태다. 2001년도 국가 총연구개발투자액 중 기초연구의 비중은 12.6%로 미국 15.6%,독일 21.2%,프랑스 22.0%와 비교할 때 현저히 낮다.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 및 투자 부족은 기초과학 전공자의 취업난으로 이어져 우수 인력이 이공계 지원을 기피하는 현상으로까지 나타나고,다른 한편에서는 외국의 과학기술지식을 사용하는 대가로 연간 25억달러를 지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축구에서의 기초체력 훈련과 마찬가지로,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놓치기 쉽고 또 그 효과가 초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아 단기간에 성과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결국 꾸준한 기초체력 훈련의 결과 우리 대표팀이 세계 일류팀과 대등한 실력을 갖추게 되었듯이,지속적인 기초연구투자 확대를 통한 과학적 역량의 강화만이 선진 과학기술 강국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수학 물리 화학 등 기초학문을 잘 습득한 창의성있는 두뇌가 두각을 나타내는 외국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기초가 튼튼한 러시아 인도의 과학자들이 선진국에서 대우받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이야말로 과학기술에 있어서의 히딩크식 전략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리더십을 보여야 할 때다.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