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폴란드의 축구경기가 열린 지난 4일. 신한은행 남동공단 지점 바로 옆 호프집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줄잡아 1백여명. 여느때와 달리 참석자 모두가 '붉은 악마'의 상징인 빨간 손수건을 손에 들고 있었다. 신한은행 남동공단 기업금융지점은 이날 아예 그 호프집을 전세냈다. 한-폴란드전 중계방송을 함께 시청하며 응원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직원들만 모인 자리가 아니었다. 거래 기업의 임직원 80여명도 가세했다. 이같은 모임은 신한은행의 전국 68개 기업금융점포 부근에 있는 모든 호프집에서 열렸다. 신한은행 직원들과 함께 폴란드전을 관전한 사람은 줄잡아 6백50여개 거래기업의 임직원 3천여명에 달했다. 이같은 성과를 낳게 한 주인공은 중소기업 지원부에서 마케팅 전략을 담당하는 우영웅 차장. 우 차장은 지난달 28일 저녁 무렵 폴란드전을 마케팅과 어떻게 연결시킬까 궁리하다가 거래기업과 함께 응원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아이디어는 다음날 아침 보고됐고, 곧바로 은행 마케팅전략으로 채택됐다. 신한은행이 이날 부담한 돈은 다 합쳐봐야 1억원도 안됐다. 서울 광교에 있는 조흥은행 본점 앞에는 가로 21m 높이 2m의 '월드컵 응원문구 게시판'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끈다. 게시판엔 국가대표팀 응원 메시지가 가득하다.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홍보실 광고팀의 최용 차장. 그는 어떻게 하면 월드컵 축구경기를 은행 홍보에 활용할까 궁리하다가 대형 게시판을 생각해 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팀회의에서 '32개 출전국 유니폼을 입고 근무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페이스 페인팅 행사도 추가하자'는 아이디어로 발전됐다. 이에 따라 홍석주 행장까지 페이스 페인팅에 참여한 '한국 축구 흥(興)이 절로!'라는 전은행적 행사가 실시됐다. 한미은행은 최근 환전수수료를 최대 50% 깎아주는 '강슛 코리아 환전 사은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다른 은행과 비슷한 월드컵 환전행사지만 한미은행이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강슛 코리아'라는 이름 덕분이다. 작명의 주인공은 개인금융팀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민홍 과장. "월드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월드컵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이름을 고안해 냈다"고 한다. 은행들이 갈수록 열기를 뿜고 있는 월드컵을 마케팅에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하는 데 한창이다. 걸림돌은 공식 후원은행인 국민은행 외에는 상품이나 행사에 '월드컵, 2002, FIFA, 16강' 등 월드컵 관련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 그러다보니 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월드컵 냄새를 물씬 풍기게 하는 아이디어가 필수적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물론 은행 직원이면 누구나 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아이디어 생산을 업(業)으로 삼고 있는 마케팅 전문가가 바쁠 수밖에 없다. 은행 마케팅팀. 관련부서 영업이 극대화될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마련하는 것이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만들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이벤트도 준비해야 한다. 갈수록 열기를 내뿜는 은행들의 월드컵 마케팅 경쟁 선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바로 마케팅 전문가들이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