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2002년 월드컵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렸다고 가정해보자. 가장 짭짤한 재미를 보는 곳은 아마도 스페인광장 일대 명품가게일 것이다. 발렌티노 프라다 구치 페라가모 루이비통 등 유명 브랜드 상품 매장이 몰려있는 이곳은 웅장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패션타운일 뿐이다. 그런데도 관광객들로 1백여개 점포가 항상 북적거린다. 이 도시에서 월드컵이 열려 해외 축구팬들까지 가세한다면 대박이 터질 게 틀림없다. 한국의 동대문 패션상권은 점포수(2만7천여개)나 규모로 보면 스페인광장 패션타운을 압도한다. 각종 원부자재와 완제품 등 패션 관련 상품이 연간 10조원어치 거래되는 세계 최대 패션시장이다. 여기에다 밤새 불야성을 이루는 거대한 쇼핑몰은 관광상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땅거미가 깔리면 '죽은 도시'로 변하는 데 익숙한 유럽 사람들에게 밤을 낮처럼 밝힌 동대문시장은 놀라움의 대상이 될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동대문상권은 요즘 조용하기만 하다. 이곳의 10만여 상인들은 '대박'은 고사하고 주고객인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마저 뜸해 매출이 오히려 줄었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흥인 덕운 등 소규모 상가는 물론 밀리오레 두타 등 대형 패션쇼핑몰 상인들도 "주로 일본인을 상대로 장사하는 점포의 경우 매출이 지난달의 절반 이하로 준 곳도 있다"며 푸념하고 있다. '월드컵 특수'와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전통의 거리로 단장한 인사동 상인들은 전통문화축제를 최대한 활용,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등 체계적인 판촉활동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떡메로 인절미를 내리치는 한복 차림의 아낙네에 초점을 맞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등 각종 공연에 넋을 잃은 모습이다. 이런 좋은 인상은 인근 카페,공예품점 등의 매출을 올려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같이 상반된 모습은 잘 갖춰진 인프라도 이를 적극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관광특구 지정 외에 상인들이 월드컵 특수를 누리기 위해 힘을 기울인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래서다. 방글라데시에서 월드컵을 보러온 한 여성 관광객은 "동대문시장의 웬만한 상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럴듯한 상품도,볼거리도 없는 동대문시장은 애당초 월드컵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것일까.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