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IT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러나 수요와 파급효과가 기대되는 데도 방치된 분야가 있다. 바로 '전자등기 시스템'이다. 대법원은 부동산등기에 이어 법인등기까지 전산화하고 있는데,그 이상은 근거법이 없어 유보하고 있다. 종래에는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납품하면 4∼5개월짜리 약속어음을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루이틀이면 결제받는다. 돈 받으러 대기업에 드나들 필요도 없다. 바로 어음제도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구매자 금융' 덕분이다. 그런데 거래구조를 살펴보면 조금 이상하다. 어음을 폐지한다면서 납품업체는 대기업을 지급인으로 하는 환어음을 발행하고 지정은행에 매출채권의 추심을 의뢰한다. 즉 은행은 구매기업에 물품대금만큼 대출해주고 나중에 대금을 추심해 대출원리금 상환에 충당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납품업체가 대기업에 대한 매출채권을 지정은행에 양도하는 것임에도 이를 채권양도라 부를 수 없는 실정이다. 함께 시행되고 있는 전자방식의 외상매출채권담보 대출도 채권양도가 아니라 담보부 대출로 취급된다. 그것은 우리 민법이 '채권양도 때 그 사실을 채무자에게 통지하거나 그의 승낙을 얻어야 하고,제3자에 대하여는 이를 확정일자 있는 증서로 해둬야 대항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이 납품업체로부터 대기업에 대한 매출채권을 양도받는다고 할 때 채무자인 대기업이야 승낙하겠지만,납품업체가 채권을 이중으로 양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은행으로서는 대항요건을 갖추는 일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확정일자 있는 증서를 받아야 하는데,온라인으로 거래하다가 공증사무소를 찾아가 확정일자 받는다는 게 번거로워 환어음과 추심위임이라는 편법을 쓰게 된 것이다. 만일 법을 고쳐 채권양도를 전자적으로 등기할 수 있게 하고,여기에 대항력을 인정해주면 구매자 금융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다. 작년 12월 유엔 총회에서는 국제거래상의 외상매출채권을 양도할 때 적용되는 국제협약을 결의했다. 그보다 한달 앞서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외교회의는 항공기 같은 운송장비를 담보로 제공할 수 있게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들 채권양도협약이나 이동장비에 관한 국제담보권협약은 전자 방식으로 등기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전자등록제도가 일부 시행되고 있다. 그것은 자산유동화법에 따라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유동화 전문회사에 매출채권 등을 양도할 때 자산양도 사실을 금융감독위원회에 등록해야 하는데,법에서는 앞서 말한 대항요건의 특례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실무상으로는 채권 등의 양도내역을 CD롬에 담아 제출하게 돼 있으며,금융감독위원회의 전자공시 시스템에 올려 일반이 열람케 하고 있다. 전자등기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법원 등기소에서 이를 부동산과 함께 관장해도 좋을 것이다. 만일 등기소에서 전자방식으로 채권,지식재산권 외에 동산담보까지 등기를 받아준다면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현재 채무자가 사용하는 동산을 담보로 제공하려면 양도담보가 고작인데,전자등기는 채무자가 계속 목적물을 점유·사용하면서 담보가치를 활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8년 자산유동화제도를 도입할 때 법인의 지명금전채권을 등기할 수 있게 하는 특별법을 시행했는데,지금은 인터넷으로 채권양도의 등기신청을 하는 것까지 받아주고 있다. 우리도 인터넷통신망을 이용해 현재의 IT기술만으로도 시행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우리가 이처럼 채권양도,동산담보를 전자등기 시스템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처리한다면 기업간(B2B)에는 더 이상 약속어음을 쓸 필요가 없게 된다. 남은 일은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는 일이다. 금융혁명을 몰고 온 영국의 빅뱅도 당초 증권거래의 수수료를 자율화하는 데서 출발했다. 우리나라도 그에 못지 않은 전자등기의 빅뱅을 기대한다. onepark@netian.com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