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공사가 회계법인은 물론 개별 회계사들에게도 공적자금 투입의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소송방침을 밝힘에 따라 회계업계가 '소송 태풍'에 휘말리게 됐다. 일각에서는 수조원에 이르는 소송을 감행할 경우 변호사 비용도 건지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과거 부실기업이 대부분 분식회계를 이용,금융회사에 손실을 입힌 상황에서 관련 회계사들 모두를 대상으로 소송을 할 경우 회계시장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공자금 회수 압박에 밀리는 예보=감사원은 이번 회계법인 및 회계사에 대한 손배소송에 대해 "분식회계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며 "이는 지난해 감사원이 실시한 공적자금 관련 특별감사의 취지와도 일치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예보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공자금 회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정치적 비판이다. 회계사들을 상대로 대거 소송에 나선다는 예보의 '발상'은 이같은 압박에 밀린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 관계자는 "공적자금 문제는 이미 정치권의 정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며 "예보는 소송을 하지 않을 경우 제기될수 있는 책임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증거를 남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자금 회수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은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회계법인은 물론 개별 회계사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예보의 주체적 판단은 이미 어려워졌다는 시각도 있다. 예보 내부에서조차 "정치권과 여론에 끌려 실효성이 없는 소송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예보의 딜레마=현재로서는 예정대로 고합을 담당했던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에 대한 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통보해 버린 상태이며 증권선물위원회의 징계 내용(분식회계)이 있기 때문에 해당 회계사들이 '면책' 판정을 받을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한 회사에 대해서라도 소송을 진행할 경우 나머지 회사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소송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 회계법인 대부분은 물론 회계사 상당수도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예보 관계자는 "우리도 판(회계업계)을 깨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책임을 묻지 않을 방법이 별로 많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수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고합의 분식회계 관련 소송규모가 현재 추정으로 1천8백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볼 때 대우의 경우는 수조원대에 이를 게 분명하다. 소송기간이 3∼5년 걸리는 것도 문제지만 회계법인이나 회계사들이 그만한 지불능력이 있느냐는 것이 더 문제다. 일각에서는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이 상징적 수준의 책임비용을 물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분식회계를 눈감아준 책임을 지면서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공적자금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몰아붙이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한 이같은 무리수는 계속 나올수 밖에 없다는 게 일반적 지적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