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철 부총리의 환율에 대한 발언이 이리저리 갈짓자(之)를 그리면서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전윤철 부총리는 지난 17일 이래 급락세를 보인 환율에 대한 언급을 거듭하고 있으나 '경제 실상의 반영'인지 '급락 우려 = 개입 가능성'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한국 경제정책의 최고 수장인 부총리의 발언인 데도 중요한 의미를 두지 않고 오히려 '왕따'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부총리와 외환담당 실무자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 부총리가 시장의 생리를 모르고 너무 순진(?)한 것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나오고 있다. 어쨌든 경제정책의 최고 사령탑이자 부쩍 관심이 높아진 환율 정책의 최종 집행자인 재정경제부 장관이 외환시장에서 스타일을 구기고 있는 셈이다. ◆ 전 부총리의 의중은 '오리무중'? = 전윤철 부총리는 24일 최근 환율 하락속도에 '상당히 우려'를 거듭 표명하는 한편 "미국의 강한 달러 정책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경제의 소비에 대한 우려가 많지만 최근 (소비가) 늘고 있다는 데이터가 나오고 있다"며 "달러화 약세 기조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달러화 약세-엔·원 강세가 조만간 종결될 것이란 견해를 피력한 셈. 부총리의 이런 발언은 4월중 소매판매 급증이나 전날 발표된 미국 4월 내구재 주문이 시장의 예상보다 증가했고 지난 18일까지 신규 실업급여 청구건수도 감소하는 등 긍정적인 미국 경제지표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이 달러 강세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발언의 논리적 근거는 다소 빈약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재무부 고위관계자들이 최근 '강한 달러 정책의 변화가 없다'는 발언을 했으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데다 경상수지 적자폭이 국내총생산(GDP)의 5%대로 점증, 달러 강세를 누그러뜨릴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추가테러 위협과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 하향 검토 경고 등 달러화 '레퀴엠'(진혼곡)이 울려퍼지고 있는 국제 금융시장의 실상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 외환시장의 한 딜러는 "미국 달러화 강세가 유지될 것이라는 부총리의 견해는 희망사항일 뿐"이라며 "하락속도가 가파르니까 우려를 표명할 뿐이고 최근 환율수준이 높다고도 얘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고 원론적인 수준으로 돌렸다. 다른 딜러는 "부총리가 계속 원론적인 발언만 하고 있다"며 "시장에서 달러약세는 이미 굳혀져 있다고보고 있으나 환율 급락을 염려해 이런 얘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동정론'을 폈다. 그러나 전 부총리는 전날 환율 하락에 대한 '우려감'을 표시하는 동시에 "다만 기본적으로 환율은 일국의 펀더멘털에 따라 절상절하가 이뤄진다"고 언급, 환율 하락 추세에 대해 거부하지 않음을 시사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22일 발표한 국내 1/4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동기 대비 5.7% 성장, 당초 예상치를 크게 웃돈 상황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분명 한국 경제와 미국 경제를 비교할 때 원화 강세는 자연스런 감이 있다. 더군다나 올들어 펀더멘털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원화는 지난 4월까지 외국인 주식 매도 등에 따라 달러당 1,300원대에서 머물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원화 강세 흐름은 '뒤늦은' 반영인 셈이다. 따라서 전 부총리 발언은 시장에서 '속도조절용'으로 뚜렷하게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달러화가 강세로 갈 것이라는 '무리한' 언급까지 하며 무의미한 메시지를 줌에 따라 시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데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추측까지 불러오고 말았다. 24일 달러/원 환율은 1,250원에 대한 고점인식이 뚜렷해 차츰 밀리고 있다. 달러/엔 환율도 전날 일본 외환당국의 2번째 대규모 엔 매도개입과 이날 파상적인 입심 공세에도 불구, 125엔대를 턱걸이하는 수준의 미약한 반등을 보이고 있다. 달러화의 약세가 쉬이 가시지 않고 있음이다. 은행권의 한 딜러는 "부총리가 달러화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의미없는 '립서비스'차원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무디스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검토되고 있고 미국 정부도 경상적자 확대로 일방적인 달러 강세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시장에 퍼져있다"고 전했다. ◆ 엇갈린 발언, 혹여 문제는 없나 = 환율이 두 통화간 교환비율이며 국가 경제의 실상을 반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달러화 약세-원화·엔화 강세'는 각국의 경제펀더멘털상의 차이에 대한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경제지표의 긍정적 신호 등 펀더멘털의 견조함이 상대적으로 미국에 비해 두드러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강세가 진행되는 반면, 미국 경기회복의 속도와 강도에 대해 걱정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양국간 상대적인 측면에서 이를 읽어낼 필요가 있으나 원화 강세 요인과 달러 약세 기조의 종결?언급하는 것은 상충된 처사다. 전 부총리는 지난 22일 "일본은 거시경제정책에 한계가 있어 엔화 강세를 지속하기 어렵고 유로도 유로화 강세를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미국이 달러에 대한 강한 정책을 쓰지 않겠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해외경제에 대한 확실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담아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루가 다르게 왕성한 변동력을 보이면서 크게 출렁이고 있는 국제 금융시장의 최근 흐름에 대해 재경부 내 분석이 엄밀했는지, 그 보고가 제대로 올라간 것이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아들 3형제의 비리 문제로 민주당 당적을 이탈하면서 '여당'이 사라졌고, 월드컵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12월 대통령 선거 등을 앞두고 경제정책 부서 내 이완이나 안일함이 배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도 여전하다. 이와 함께 환율 정책을 담당하는 실무진과의 교감에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시선도 있다. 지난 16일 전 부총리가 "현 수준의 환율은 우리 나라 경제실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언급, 하락을 용인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반면 비슷한 시각에 재경부는 '예의주시할 것이며 필요할 경우 적절히 조치할 것'이라는 구두개입에 나선 바 있다. 두 발언은 얼핏 '엇박자'가 아니냐는 인식이 나올 만큼 차이를 보였으며 재경부 관계자는 "환율 움직임에 대해 깊이있는 견해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 부총리의 인식의 정도가 깊지 않음을 드러냈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부총리와 실무진 사이에서 손발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일단 부총리보다 실무진 발언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정부 내부에서 엇갈린 입장이 나온다는 것은 시장의 불신감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걱정했다. 한경닷컴 이준수·이기석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