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準亨 < 서울대 公法學 / 베를린 자유大 초빙교수 > 올리버 스톤이 1994년에 만든 '타고난 살인자'란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미국 전역을 누비며 살인극을 벌인다. 그런데 이 영화가 실제로 십여건의 살인사건에 동기를 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중 미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한 피해자는 스톤 감독을 상대로 2천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화제가 됐다. 2001년 봄 루이지애나주의 에이미티(Amite)법원은 '영화에서의 폭력묘사는 의사표현의 자유에 의해 허용된다'면서 소송을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지금 독일은 폭력 살인 등을 미화하는 내용의 컴퓨터게임,영상매체 등에 대한 규제문제와 씨름을 하고 있다. 에어푸르트에서 벌어진 광란의 학살극 때문이다. 지난 4월26일 에어푸르트 구텐베르크 김나지움에서 슈타인호이저란 낙제생이 복면을 하고 들어와 당시 대입예비시험에 여념이 없던 교사 13명과 학생 2명,경찰 1명 등 모두 16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엽기적 사건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사건이 벌어지자 독일의 정치권과 언론은 당장 무기규제법 문제를 들고 나왔다. 총기규제 강화방안은 별 어려움없이 타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같으면 무기업자들의 로비로 법을 느슨하게 만드는데 총대를 맸던 기민-기사당 연합조차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연령을 21세 또는 25세로 높이고 총기허가 보관방법 등 각종 규제를 강화시키는데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어푸르트 집단학살극 배경에서 범인이 총기에 접근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는 점이 있는 만큼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경찰이나 군부대 초소 등에서의 총기탈취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만큼 총포류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볼 일이다. 문제는 '증오산업',즉 컴퓨터게임 등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극단적 폭력,살인 등을 소재로 해 번성해 온 콘텐츠산업을 규제할 것인가 하는 것을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슈뢰더 총리 등 관계자들이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시연을 보면서 규제쪽으로 분위기를 잡는 동안 연방청소년유해물심사처에서 이와 상반되는 판정을 내린 것도 이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물론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컴퓨터게임이 그 원흉'이라고 매도하는 극단적 견해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폭력적 컴퓨터게임을 규제해도 에어푸르트 광란 같은 사건을 막거나 사후에 근절시킬 수는 없다. 문제는 컴퓨터게임이 아니라 범인의 주변환경에 있다'는 견해가 설득력이 크다. 대입예비시험 탈락 등으로 인한 좌절과 사회,특히 학교에 대한 증오,부모와 사회의 무관심 등이 범죄의 싹을 키웠다는 것이다. 사실 범인의 행위와 컴퓨터게임 사이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또 폭력적 컴퓨터게임의 유해성은 마약의 경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약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컴퓨터게임은 수십만 수백만이 하지만 그 영향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또 한 나라에서 규제를 해도 국제적 협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규제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규제반대론자들이 논리적 설득력면에서 우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컴퓨터게임 등에 들어있는 폭력적 콘텐츠가 공격성을 증가시킨다는 각종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자나 서비스제공자들의 자율규제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무성하다. 물론 고도로 정확한 인과관계가 판명되지는 못할지라도 폭력적 콘텐츠를 규제하는 방향으로,특히 그 규제방식면에서 강도를 높이는 쪽으로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다. 가령 도서납본처럼 중앙에 각종 콘텐츠를 제출하도록 하여 기존의 청소년유해성 유무를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아무튼 독일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무차별 폭력으로 이어지는 증오의 사회심리학 문제와 함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대선과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문제로 영일이 없는 우리지만 이 문제를 강건너 불 보듯 할 처지는 아니기 때문이다. joonh200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