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얼마 전까지는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정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엘리어트 스피처 뉴욕주 검찰총장이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기업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기 때문이다.


올해 초 엔론 스캔들이 불거질 때 시가총액 기준 미국 최대기업인 GE의 제프리 임멜트 회장은 엔론을 '미국 경제의 예외'라고 비난했다.


나머지 기업들은 분식회계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투자자들은 엔론의 라이벌인 '다이너지'가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다이너지도 60달러에 달하던 주가가 한자릿수로 주저앉는 등 엔론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


에너지 기업들 대부분 닮은 꼴이다.


에너지업종뿐만이 아니다.


엔론을 '예외'라고 공격했던 임멜트 회장의 GE도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다.


GE 주가가 사상 최저수준을 맴돌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이쯤되면 가장 먼저 뭇매를 맞았던 엔론만 불쌍할 뿐이다.


월가는 한술 더 뜬다. 회사내 애널리스트들끼리는 '쓰레기 주식'이라면서도 외부에는 '유망주식'으로 추천,물의를 빚고 있는 세계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도 "잘못은 했지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고객들에게 40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입힌 건 인정하지만,골드만삭스 JP모건 등 다른 증권사도 마찬가지라고 강변한다.


한마디로 물귀신 작전이다.


주가가 사상 최고 수준이었던 2000년 2월 증권사들은 '매수추천'으로 일관해 '매도추천'은 '매수추천'의 1.5%에 불과했다.


그렇게 많이 사도록 했으나 지금까지 주가는 평균 25% 떨어졌다.


이를 보면 회사 내부 e메일이 '재수없게' 검찰에 적발된 메릴린치만 불쌍하다는 얘기도 맞는 말이다.


최근 검찰당국이나 증권감독위원회(SEC) 조사가 월가 전반으로 확대되는 건 거꾸로 '월가의 사기극'이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말해준다. 언제 어디서 '사기'가 들통날지 모르는 판이니 경기회복에도 불구,주가가 쉽게 못오르는 실정이다.


한국 등 월가의 영향권에 있는 투자자들은 결국 월가 사기극의 피해자들인 셈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