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꽤 안다고 자부해온 기자도 중국에 와보니 거의 까막눈이었다.


공항에서부터 길거리 간판,식당 메뉴에까지 모르는 한자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 인(人)"자 세 개를 "수풀 삼(森)"처럼 겹쳐 쓴 글자를 중국인들은 이를 "무리 중(衆)"으로 읽는다.


각종 카드를 뜻하는 "카"자도 있다.


이는 상하(上下) 두 글자를 위아래로 겹쳐써 영문 K를 상형화한 것이라고 한다.


상용한자의 대부분이 이런 간자였다.


한국인들은 정자체만 배웠으니 현재 중국에서 쓰는 간자체가 생소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일본 신문보다 중국 신문이 더 읽기 어렵다.


중국인과 교환한 명함에서조차 서로 이름을 읽는데 애로가 많을 정도다.


이에 대해 중국에 7년째 근무한 하나은행 상하이지점의 정해진 차장은 "중국과 제대로 교류하려면 국내 한자교육부터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물론 중국인들이 놀라는 점도 있다.


사찰 유적지에 즐비한 옛 한시를 한국인들이 비교적 잘 읽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두보나 이백의 시를 읊어댈 때는 경이로운 눈으로 보기도 한다.


마침 ADB(아시아개발은행)총회 참석차 상하이에 온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한자교육 문제를 물어봤다.


전 부총리는 전임자의 고교평준화 발언 등의 논란을 의식한 듯 사견이라고 하면서도 "준비된 소신"을 쏟아냈다.


전 부총리는 "평준화는 상향평준화가 돼야 한다"며 "한자교육 문제도 교육내용과 현장수요가 안맞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공감했다.


이어 "고교에 독어 선생만 있다고 불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독어만 가르친다"며 수요자 중심의 교육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수십년째 국.한문 병용이냐,한글 전용이냐를 놓고 학자들간에 논쟁을 거듭해왔다.


최근 "한류(漢流)열풍"(중국 붐)속에 새삼 한자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어떤 한자(정자인지,간자인지)를 가르칠 것이냐에 대한 논의는 과문한 탓인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사실 셰익스피어시대 영어교육에서 벗어난지도 얼마 안지났지만. 6년만에 찾은 상하이는 초고층빌딩으로 뒤덮여 "여기가 과연 중국인가"라는 의아심마저 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한 중국인의 반문이었다.


"왜 한국에선 당(唐)나라때 한자를 배웁니까?" 참고로 중국은 간자체를 사용한지 53년이 됐다.


오형규 경제부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