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평가의 패러다임이 10년마다 바뀌고 있다. 1980년에는 사업규모를 늘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럴 듯한 사업이면 무조건 뛰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일본식 케이레츠나 한국식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일본제품이 미국시장에 물밀듯이 들어오자 미국에서는 일본을 배우자는 소리가 드높았고 미국의 경영대학원에서는 일본경영관련 학과목이 인기를 끌었다. 미국기업들도 일본식대로 마구잡이로 사업규모를 늘려 나갔다. 부실기업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사의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잭 웰치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일순간 바꿔버렸다. 웰치 회장은 당시 GE의 방만한 경영을 비난하면서 세계시장에서 1등이나 2등을 할 수 없는 사업은 모두 없애라고 했다. 실제로 GE는 1백억달러 규모의 사업을 처분했다. 규모경영에서 이윤경영으로 전환한 것이다. 1990년대에는 비즈니스위크,포천,포브스 등 전문지들도 기업 평가기준을 바꿨다. 이제 기업들은 크기보다는 이윤추구를 더욱 중요시하게 됐다. 각종 전문지가 발표하는 기업 평가 톱리스트에서 IBM,코닥 등이 빠지는 대신 러버메이드,코카콜라 등이 올라갔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윤을 중시하다 보니 담배제조회사인 필립모리스 같은 회사들도 포함된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된 것은 최근의 스캔들로 유명한 엔론도 포함된 것이다. 엔론의 경영성과가 모두 조작에 의한 허구임이 드러나자 기업평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게 됐다. 2000년대에는 고도의 윤리성(integrity)이 새로운 평가기준이 됐다. 고도의 윤리란 단순한 윤리(ethics)의 수준을 넘어 성실 정직 고결함을 포함하는 상위의 개념이다. 기업의 크기나 이윤보다는 존경 받는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기업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있는가. 여러 평가기관의 의견을 종합할 때 역시 GE이다. 과연 GE의 핵심역량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지금부터 1백30년 전인 1872년 발명왕 에디슨은 에디슨 전기회사를 설립한 후 1879년 전구를 발명해 시장에 내놓았다. 1892년에는 토머스 휴스턴 전기회사와 통합해 GE가 탄생됐다. 미국의 주식시세를 나타내는 다우존스가 1896년 12개 회사의 주식시세 평균치를 계산하면서 시작됐는데 그 중 11개 회사는 없어졌고 오직 GE만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기업 평가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GE는 지난 1백여년 동안 계속해서 기업평가 톱리스트에 들어왔다. 오늘날의 기업평가기준은 고도의 윤리성인데 여기에서 GE는 또다시 앞서가고 있다. GE의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면 흥미로운 것이 있다. 경영이념/목표(Mission Statement)가 따로 없고 대신 고도의 윤리 헌장(Integrity Statement)이 눈에 띈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GE는 이를 특히 강조하게 된다. 2000년에 발표한 교서에서 웰치 회장은 GE의 핵심역량은 질좋은 제품,고객위주 경영,또는 이에 따른 기업의 이윤이 아니라,그 저변에 깔려있는 더욱 중요한 가치,즉 고도의 윤리성임을 주지시켰다. 아시아의 상황은 어떤가. 1997년 경제위기를 겪은 아시아 기업들은 규모경영에서 이윤경영으로 전환하면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긴 했지만 아직까지 윤리경영에의 길은 멀어보인다. 아시아의 경영환경이 수치상으로는 꽤 매력적이지만 아직도 많은 해외 투자자들이 꺼리는 이유는 윤리경영에의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고도의 윤리경영은 고결성과 시장성을 포함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는 너무 중요해서 결코 포기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것이다. 기업의 일시적 생존을 위해서 이같은 가치가 희생될 수 없다. 이런 가치는 또한 시장기능에 맞아야 한다. 도덕군자의 윤리와 달리 경영자의 윤리는 궁극적으로 상업적 가치창조에 있다. 고결성과 시장성의 윤리경영을 하지 않는 기업은 언젠가는 망한다. 경영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좋은 품질,고객을 위한 경영,매력적인 최고경영자 만으로는 부족하다. 고도의 윤리경영은 윤리 자체로서 뿐 아니라 기업의 핵심역량으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cmoo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