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STX조선 대표이사(52)는 명함이 두개다. STX조선의 최대주주인 STX(옛 쌍용중공업)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그만큼 몸이 두개라도 모자란다. STX가 대동조선을 인수한게 지난해 11월이니까 6개월째 진해조선소 현장을 챙기고 있다. 2일엔 투자자를 대상으로 서울에서 기업설명회를 갖는다. 이어 내년 상반기중 STX조선을 거래소시장에 상장시킬 계획이다. 대동조선은 한보철강 세양선박에 인수된 뒤 다시 법정관리를 거친 기구한 운명의 조선업체였다. 강 대표가 그런 회사를 인수해 강한 애착을 보이는 데는 간단치 않은 사연이 있다. 그가 대동조선 인수에 뜻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 무렵부터. 당시 영업담당 임원으로 선박용 엔진을 납품하기 위해 대동조선 진해조선소를 드나들었다. 영업에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는 조선소 앞 횟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계열 조선소가 있으면 선박용 엔진을 수월하게 납품할 수 있을텐데…'라며 넋두리를 하곤 했다. 한데 이후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대동조선은 선박용 엔진 1백%를 STX에서 구매하고 있었는데 지난 98년 법정관리를 받게 되면서 납품길이 막혀버린 것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대동조선에 경쟁업체 출신 법정관리인이 들어서면서 엔진 납품업체도 그 쪽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창원공장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주요 고객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으니 영업사원들의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지난 2000년 STX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의 설움을 해소시키고 자신의 과거 욕심을 현실화하기 위해 대동조선을 인수키로 마음 먹었다. "임원들은 인수대금으로 8백억∼9백억원을 제시하자고 주장했지만 난 2천8백억원을 써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지요. 그 정도 가 대동조선의 정리채권을 상환하면서 공적자금도 전혀 손실내지 않을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는 "업무가 주어지면 내 자신이 오너라고 여기며 일을 했고 월급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일에 대한 욕심이 많다. 그 욕심은 종종 '튀는' 행동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우리경제가 한창 급성장하던 75∼80년 중반 무렵에 특히 그랬다. 한번은 (주)쌍용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던 때다. 당시 쌍용그룹은 기업문화가 보수적이라 언론매체에 광고를 자주 내지 않았다. 그가 총대를 멨다. 그룹차원에서 사원모집 광고를 내자는 기획안을 올렸다. 그러나 윗사람들의 의사결정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그는 '겁도 없이' 신문 1면에 신입사원 채용광고를 턱하니 내버렸다. 청와대 수출확대회의에 다녀오던 사장이 자기도 모르는 채용광고를 보고 노발대발한 것은 불문가지. 죄값으로 사표를 냈지만 다행히 반려됐다. 기획한 광고문안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덕분이었다. "명(命), 카라카스(베네수엘라 수도)라고 1면에 광고를 냈는데 인재들이 몰려들었어요. 입사 경쟁률이 30대 1에 달해 당시로선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젊은이들의 해외진출 열망을 자극한 전혀 새로운 시도라는 평을 받았지요." 새로운 것에 대한 의욕과 도전은 이어졌다. 역시 (주)쌍용 시절이다. 일개 과장 신분임에도 기획회의 시간에 "신임 사장의 경영스타일이 시대흐름에 맞지 않으니 경영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용감무쌍하게 제안했다. 회사측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든지 다른 부서로 옮기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하지만 승부욕은 더 타올랐다. 그룹내 험한 일로 소문난 목재사업부문에 지원해 2년반 동안 뒹굴었다. "태백산맥 소백산맥 안돌아본 산이 없었을 정도"라고 한다. 회사 초년병 시절 과도할 정도의 열정이 도전의식을 키워줬다면 IMF체제 직후 쌍용중공업 재무본부장을 지낸 경험은 최고경영자로 도약하기 위한 첫 관문이었다. 당시 쌍용중공업은 외상수입(유전스) 규모가 8천만달러에 달했는데 원.달러 환율이 두배 이상 상승, 유동성 위기에 몰리게 됐다. 외환위기 직전 1백30억∼2백억원에 불과하던 연간 이자비용이 5백억원으로 급증했다. 위기는 기회라든가. 투명경영의 위력을 비로소 깨달은 소중한 계기였다. "평소 우리 회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던 일본의 닛쇼이와이 종합상사로부터 85억엔을 연 5.8%에 조달했지요. 단기고금리 자금을 일시에 상환하고 3년짜리로 롤오버해 겨우 위기를 잠재웠습니다." 이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이제 직면한 도전은 STX조선을 보란듯이 정상화시키는 일이다. 무엇보다 주인이 네번이나 바뀌면서 생겨난 종업원들의 패배주의를 극복시키는게 급선무다. 패배주의는 품질,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인수 직전 사내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해 현장직 3천2백명이 입사했으나 3천명이 떠나 버렸다. '종업원 만족 없이 고객 만족,주주 만족도 없다'는 기치를 내걸고 현장부터 직접 챙기기 시작한 이유? 그는 종업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매달초 조회를 실시,모든 경영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70억원을 투자해 식당 탈의실 주차공간 등의 사소한 불편도 고쳐 나가고 있다. "이익이 나면 어떻게 해보겠다는 경영방식은 접었습니다. 먼저 처우를 개선해 주고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선회했어요. 인수 석달 후부터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현장을 이탈하는 직원들이 급격히 줄어들었지요." 종업원이 가난하면 회사가 가난하다는 지론도 귀가 따갑게 전파하고 있다. 말뿐만은 아니다. 지난해 STX 직원들에게 자사주를 구입케 한 것이 좋은 예. STX 직원들은 회사보증 융자를 통해 주당 3천∼4천원에 자사주를 구입했다. 최근 주가가 6천∼7천원으로 상승했으니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는 셈이다. STX조선 주식 1백50만주를 종업원들에게 배정키로 한 것도 같은 의도다. 종업원들에게 새 희망을 심어주고 있는 그가 STX조선을 '월드 베스트 조선소'로 육성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 < 약력 > 50년 8월 경북 선산 출신 74년 명지대 경영학과 졸업 75년 (주)쌍용 기획조정실 입사 86년 (주)쌍용 총무부장 93년 쌍용중공업 이사 97년 쌍용중공업 상무 2000년1월 쌍용중공업 전무 2000년11월 쌍용중공업 대표이사 현 STX 대표이사, STX조선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