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泰吉 < 서울대 명예교수 / 학술원 회원 > "요즘 우리나라에는 대통령 되고 싶은 사람들이 무척 많아요" 어느 잡담자리에서 누가 이런 말을 했을 때,몇사람이 웃었다. 그 말을 받아서 다른 사람이 "그래도 대통령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더 많겠지요"라고 했을 때,또 웃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웃고 말 일이 아닌 것도 같다. 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되기를 열망하는지 차근차근 생각할 볼 필요가 있음직 하다. 대통령에 출마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대체로 대동소이하다. 우리 한국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나서게 됐다는 큰소리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을 50% 올리겠다고도 하고,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통일을 앞당기겠다는 약속도 한다. 그러한 목표 제시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실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통령 지망자들은 그 방법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않는다. 더러 방법을 말한다 해도 막연한 추상론에 그친다. 구체적이며 신빙성 있는 방법론의 뒷받침이 없는 시정목표의 제시는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를 밝혀주는 믿을 만한 증거로 볼 수 없다. 대통령의 자리에는 국가 경영의 최고지휘자라는 막중한 책무가 따른다. 그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춘 사람만이 그 자리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 그 준비의 첫째는 국가경영이 요구하는 광범위한 지식과 실천력의 축적이요,그 둘째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덕성(德性)의 함양이다. 이 두가지 준비를 위해서는 국가원수들의 성공사례를 포함한 여러 관련 사항에 대한 폭넓은 문헌 연구가 필요하며,인간적 갈등의 극복으로 이어진 남다른 체험과 사색도 필요하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이 과연 그만한 준비를 갖췄는지 의심스럽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대통령직을 위한 별다른 준비가 없이도 그 직책을 무난히 수행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군사정권 특유의 독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오늘날의 대통령 후보가 그 준비 없이 당선됐을 경우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을 지망하는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대개 그들이 말을 잘한다는 사실이다. 이 능변(能辯)이라는 장기(長技)는 높은 덕과 결합할 경우에는 위대한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으나,덕이 부족한 사람이 말만 잘할 경우에는 도리어 거짓을 초래하기 쉽다. 우리가 말 잘하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까닭이다. 국가를 사랑하는 대아(大我)의 충정에서 대통령 자리를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그보다는 개인의 영화와 가문의 영광을 염원하는 동기가 앞서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 자리는 개인의 영화나 가문의 영광을 위해 만든 직책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 개인의 영화나 가문의 영광을 국가의 번영보다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야심가들이 넘봐서는 안되는 공기(公器)의 하나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자질을 갖추지 못한 야심가가 요행히 그 자리에 앉는다 하더라도,그가 누리는 개인의 영화와 가문의 영광은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 뿐,길게는 오히려 오욕(汚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누가 대통령의 자리를 맡느냐에 따라서 국가의 장래가 크게 좌우된다. 그리고 민주 국가에서 대통령을 결정하는 권리와 의무는 결국 국민에게 주어져 있다. 국민 특히 유권자의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운동경기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편을 갈라서 응원해서는 안되며,시류(時流)의 추세에 내맡겨서는 더욱 안된다. 우리는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으로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의 자리에 도전하는 후보자 각각의 사람 됨됨이에 대해 면밀히 고찰해야 한다. 그는 진정한 애국자인가 또는 자신의 영광에 집착하는 야심가인가,그의 말에 일관성이 있는가,또는 그가 때와 장소에 따라서 말바꾸기를 잘하는가,그에게 국가를 경영할 만한 경륜이 있는가? 이상과 같은 여러 시각에서 그를 고찰하되,그가 대중 앞에서 또는 TV카메라 앞에서 한 말을 따라 그를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며,그가 살아온 실천의 발자취를 따라 그를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