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m@case.co.kr 나는 종종 서서 결재를 한다. 결재를 빨리 끝낼 수 있어 경제적이고,상대방과 같은 눈높이로 대화하게 되니 친밀감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을 처리하다 보면 정작 장고(長考)를 요하는 사안은 전체의 5%를 넘지 않는다. 오래 고민해야 반드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기때문에 가급적 그 자리에서 빠른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 평소 이런 행태가 집과 사석(私席)에까지 연결되다 보니 다소 급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세상이 워낙 복잡하고 경영환경도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빨리빨리'에 익숙해진 것 같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렇다. 음식점에서 5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닦달하는 모습이나 출발신호가 떨어진후 앞차가 2,3초만 지체해도 '빵빵'대는 모습은 흔한 일이다. 이런 조급함이 일면 긍정적으로 작용해 온 것도 사실이다. 6·25사변으로 초토화된 우리나라가 60년대 이후 비약적인 산업발전을 이루면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정신적 원동력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최근에는 '빨리빨리'근성이 우리나라를 인터넷과 게임 강국의 반열에 올리는 데 일조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빠른 손놀림과 후닥닥 해치우는 실천력이 이룩한 '쾌거(?)'가 아닐까. 반면 조선시대 '일성록'이나 '실록'등의 자료를 보면 그 치밀함과 함께 조상들의 여유로움과 하릴없음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보면 본디 우리 민족의 성격이 급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의 '빨리빨리'근성은 최근 50여년 동안 이뤄진 급격한 산업화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스피드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자동차는 상상만 해도 짜릿하고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성능에 걸맞은 브레이크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살이,삶에도 이러한 '생각의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혹여 그동안 우리는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엔진 개발에만 몰두,스피드만이 미덕이고 전부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스피드시대'에 편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걸맞은 '생각의 브레이크'를 살펴봐야 한다. 혹시 나도 트럭 엔진에 국민차 브레이크를 달고 질주하는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