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신용금고가 지난 3월 1일부터 상호저축은행으로 일제히 간판을 바꿔 달았다. 지난 1972년 첫 탄생한 이래 30년동안 대표적인 서민금융회사로 자리잡아온 신용금고업계가 저축은행으로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신용금고는 은행 문턱이 높은 서민과 영세사업자들이 부담없이 찾을 수 있는 금융회사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최근 일부 불법대출 사건에 연루되는 등 "성장통(痛)"도 적지않게 앓고 있다. 저축은행이 진정한 서민금융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며,감독당국의 제도적 장치는 보완할 것이 없는지 등을 살펴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최경환 한국경제신문사 부설 한경종합연구소장의 사회로 김병주 서강대 교수,문병학 상호저축은행중앙회 회장,하인국 푸른상호저축은행 대표,장귀남 이사벨라 대표(삼화상호저축은행 고객) 가 참석했다. ◇최경환 소장=저축은행의 그동안 공과를 평가한다면. ◇문병학 회장=예금을 맡기는 고객에게는 은행권보다 높은 금리로 재산 형성에,신용이 낮고 담보가 없는 영세사업자에는 신용대출을 활성화해 사업자금 마련에 도움을 줬다. 은행이 신경쓰지 않던 틈새시장을 공략했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몫을 했다고 본다. ◇최 소장=저축은행업계는 일부 불법대출 관행을 근절하는 등 개선 과제도 많지 않은가. ◇김병주 교수=저축은행은 1972년 사채 동결조치와 함께 탄생했다. 당시 신용금고 설립 취지는 제도권 밖의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던 서민들을 제도금융권으로 끌어들이자는 것이었다. 일부 신용금고가 은행 흉내를 내면서 크고 작은 금융사고를 일으키기도 했지만,지난 30년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자면 잘못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하인국 대표=상호저축은행인들도 서민금융회사 본연의 역할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최근 2∼3년전부터 저축은행업계가 잠시 주춤하는 틈을 타 일본계 대금업체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일부 사채업자들의 횡포도 다시 살아나고 있어 걱정스러운 면이 많다. ◇장귀남 대표=일반 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와 비교할 때 상호저축은행의 경쟁력은 친절함이다. 거래 상인들을 직원이 일일이 찾아다니며 수금하고 공과금까지 받아준다. 요즘엔 근처 은행 직원들도 방문 업무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저축은행 직원들이 앞서 있다는 느낌이다. ◇최 소장=1997년 2백31개였던 저축은행 수가 현재 정상영업중인 업체 기준으로 1백15개까지 줄었다. 지난 4년은 시련의 시기였는데 어려움을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 ◇김 교수=외부 경영환경의 변화와 저축은행업계 스스로의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저축은행업계는 위로는 가계금융 확대에 나선 은행권,아래로는 새마을금고 신용협동조합 우체국 대금업체 등의 공세 사이에 낀 형국이 됐다. 잇달아 터진 금융사고에 따른 공신력 저하 문제도 심각했다. 자연히 고객 이탈이 이어졌다. 예전에 지방을 돌면서 신용금고 대표들을 만나보면 비제도권 밖의 사채업자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많다. 업계의 위기는 자업자득인 셈이다. ◇문 회장=외환위기는 신용금고뿐 아니라 금융권 전체에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신용금고는 규모가 작아 충격이 더 컸다. 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고 준법감시인을 의무적으로 두도록 하는 등 경영 투명성을 위한 보완책이 마련됐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거래소에 상장하거나 코스닥시장에 등록하는 업체도 늘어나야 한다. 저축은행 업계 전체가 자산건전성을 높이고 수익성을 개선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된다. ◇하 대표=두 분의 지적에 공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경영자들이 제대로 된 경영의식을 갖고 운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감독기관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현장에서 피하고 숨기면 방법이 없다. 경영자 스스로 의식을 바꿔야 한다. 제도적 문제도 있다. 대주주가 임명한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주요 경영현안이 결정된다. 대주주가 이사들을 지배하는 셈이기 때문에 대주주의 횡포를 막을 수 없었다. 감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대주주와 친분이 있는 사람을 데려와 앉혀 놓으니까 부정을 보고도 감사가 제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축은행 전환과 함께 제도 개선으로 예전의 독재체제는 불가능할 것이다. ◇김 교수=많은 저축은행 대표들이 건설사 골프장 등 다른 회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맡긴 돈을 자신의 사업에 쓰니까 사고가 난다. 일부 저축은행 대표들은 지역 유지들이다. 지방자치 단체장이나 국회의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견제가 쉽지 않고 감독도 소홀했다. 최근 만난 외국인 투자자는 앞으로 저축은행에서 대규모 부실이 일어나면 국가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걱정을 들려줬다. 업계에서 이 점을 자각해야 한다. 중앙회와 업계가 손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최 위원=저축은행의 체질 개선을 위해 어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가. ◇김 교수=시장 진입과 퇴출이 동시에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적정한 자본금 규모가 유지돼야 한다. 경영을 잘 하려면 자본금이 많을수록 좋지만 지나친 자본금 규모는 퇴출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규모를 찾아야 한다. 리스크 관리는 두 말 할 필요가 없는 과제다. 문제는 제도보다 운영이다. 감독당국의 건전성 요구를 업계가 잘 따라야 실질적인 효과가 살아난다. ◇문 회장=감사위원회와 리스크관리위원회 설치 등 제도적으로는 상당히 개선됐다. 다만 저축은행 임원은 퇴임 3년후까지 금융사고에 연대책임을 지도록 돼 있는데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책임경영을 강조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반면 이 때문에 오히려 전문경영인 영입이 어렵다. ◇하 대표=업계가 가장 원하는 것은 자유로운 점포 확대다. 금융권 가운데 저축은행업계만이 유독 지점 개설을 제한받고 있다. 각 업체가 자율적으로 이익이 난다고 판단되면 어느 곳이라도 점포를 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 교수=저축은행의 장점은 지역고객을 잘 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 지역을 벗어나 광범위하게 영업을 할 필요는 없다. 물론 현재와 같은 과다한 지점 규제는 필요없어 보인다. 업계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지역밀착형 영업을 강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지점설치를 자유화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기반을 빠르게 넓히고 있는 일본계 대금업체로부터 저축은행업계가 배울 것도 많다. 일본의 최대 대금업체인 다케후지는 신용조사를 철저히 하고 돈을 빌려준다. 금융은 이제 돈 놀이가 아니고 정보싸움이다. 소액 급전대출이 늘고 있는데 저축은행 스스로 정보기술 데이터 분야에 얼마나 투자를 하는지 의문이다. ◇문 회장=중앙회 차원에서 통합전산망을 구축하고 있다. 1백15개사 가운데 현재 50여개사가 연결돼 있다. 연말까지 모든 저축은행이 통합전산망에 가입하면 고객도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 소장=저축은행 출범에 즈음해 바라는 점은. ◇문 회장=정부가 신용금고를 저축은행으로 전환한 것은 사금융 억제로 서민을 돕고 영세사업자를 활성화하라는 취지일 것이다. 최근 업계 대표들이 모여 국민들에게 실망주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자정결의도 했다. 투명경영을 약속한다. ◇김 교수=신용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 등에 대한 지나친 대출은 자제해야 한다. 자신의 영업기반을 바탕으로 무리하지 않는 영업이 필요하다. ◇하 대표=저축은행 경영자들도 많이 물갈이됐다. 전문 경영인들이 많이 들어왔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 은행과 대금업체 사이의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 신속함과 친절함을 앞세운 새상품 개발에 업계가 함께 노력할 것이다. ◇장 대표=토론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저축은행으로부터 더 좋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고객 입장에서는 소규모 간이점포를 더 늘려주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