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달러를 덧붙여 줍니다" 경기가 급랭하면서 집값이 폭락했던 90년대 초,미국에서 발행되는 교포신문에 종종 등장했던 광고다. 은행빚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집을 사면 3천달러를 얹어주겠다는 얘기였는데,처음 봤을 때는 무척 신기했었다. '사연'은 간단했다. 50만달러짜리 집을 자기돈 15만달러,은행돈 35만달러로 샀는데 집값이 30% 떨어져 제 돈 몫은 이미 없어졌고 이자 내기도 힘겨워 신용파탄이나 면하기 위해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일본의 경우 골프장 회원권값이 장기불황 탓으로 거의 10분의 1로 떨어졌지만 매매는 전면 중단상태라는 게 최근 귀국한 한 친구의 얘기다. 살 사람이 없는 탓도 있지만 팔아봐야 세금 명의이전(移轉) 비용 등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설명이었다. 그런 저런 얘기를 감안하면 평당 4천만원을 넘었다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10평형 재건축 아파트값은 생각할 점이 있다. 과연 우리나라 땅값이나 집값은 다른 나라와 다르기만 할까. 집값에 날개가 없기 때문에 추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도곡동 10평형 아파트값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거나 그 의미를 견강부회(牽强附會)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물량도 많지 않은 재건축대상 특정 아파트값을 일반적인 사례인양 들추는 것은 잘못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부동산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고,그것은 보기에 따라선 떨어질 날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번 IMF사태는 빚에 의존해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던 기업들 탓이었지만,부동산가격 급락-개인파산 급증으로 경제가 대혼란을 겪게 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비교적 신용도가 높은 편인 중견기업에도 9%를 적용하면서 아파트담보대출은 6%대로 해주는 현실은 분명히 뭔가 잘못돼 있다. 생산적인 기업대출을 늘려야지 소비성 가계대출에 치중해서는 문제가 있다는 시각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만사가 부동산 위주인 관행이 갈수록 그 도를 더해 간다는 점에서 그것은 걱정스러운 일면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부동산값이 급락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개인파산-은행파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모든 가격이 다 그렇지만,부동산가격도 경제정책 운용의 결과다. 올들어 아파트값이 치솟고 있는 것도 지난 몇년간 경기를 부추기기 위해 금리 인하,양도세 감면 확대,분양권 전매 허용 등 일련의 정책을 쏟아낸 때문이다. 문제의 도곡동 10평형 값이 최근들어 또 한차례 오름세를 탄 것 또한 재건축요건 강화로 이미 허가난 곳의 기득권에 대한 평가가 더해진 결과이기도 하다. 원인행위를 해놓고 나타난 결과(가격)를 행정력으로 억눌러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난센스다. 곰탕과 설렁탕이 그게 그것인양 비슷비슷해진 게 장기영 부총리의 가격통제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있지만,가격통제나 행정력을 동원한 단속의 한계는 자명하다.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벌이면서 아파트값이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나,그게 반짝 효과일 뿐이라는 건 이미 경험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작년 중 분양권 전매 허용 등 일련의 조치를 취한 데 대해서는 정책 당국자들 입장에서 나름대로 할 말이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불황의 골은 깊고 경기를 부양하라는 요구는 빗발치는데 민간 주택건설을 촉진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주택건설을 늘리는 것 이상 부양효과가 큰 방법이 있을 수 없고,그러려면 어떤 형태로든 주택매입 수요를 늘려 나가는 것이 불가피했을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이상 집값을 부추기는 형태의 대응은 되풀이돼선 안된다. IMF때 집값 하락이 한동안 나타난 적이 있지만,지금 여기서 더이상 집값이 오른다면 어느 날엔가 일본형 디플레를 피할 수 없게 될것이란 점을 우리 모두 직시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투자와 수출은 회복기미가 뚜렷하지 못한 편이지만,금리인상·유동성 환수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평당 4천만원짜리 아파트는 경제정책의 제1차적인 목표를 집값안정에 두도록 촉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사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