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미국이 딱도 하다. 어딘가 미국답지 않은 행보가 불안해 보인다. 세계 곳곳에서 주목하고 있는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각종 판정시비와 불협화음으로 비난과 눈총의 대상이 되고 있는가 하면,대통령 부시는 무슨 사연 때문인지 발설했던 '상징적' 강성 발언의 악성 여파를 막느라 방한 일정 내내 미소와 부드러운 말로 다독이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패권을 과시하는 태도와 함께 그 역력한 '패트로나이징(patronizing)' 태도,말하자면 후원자인 척,보호자인 척 하는 모습과 태도가 영 떨떠름하지 않던가. 세계 비전도 별로 보이지 않거니와 매너도 우아하지 못하고,관용은 커녕 실속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전쟁은 안한다'라는 말을 입밖에 내긴 냈지만 '불씨는 또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는 끈 달린 수사학도 덧붙여졌다. 21세기들어 미국이 아무래도 불안하게 느껴진다. 미국 민주주의의 과정적 체제 자체에 의문을 품게 한 대통령 투표의 개표 시비도 그러려니와 미국 테러 사건 이후에는 일종의 심리적 공황 사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여러 사안에서 여러 방식으로 자신의 힘과 존재를 재확인하고 거의 '확인 사살'수준까지 하려는 듯 보인다. 실질적 힘은 강대하되 정신적으로는 약해 보이는 작금의 아메리카다. 어느 시대에도 국가의 사이키(psyche)란 존재할 터인데 적어도 지금의 미국은 그리 건강한 사이키 같지는 않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이상한 형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독창적인 '만민족,만국,연합 형태'의 국가를 만들고 운영해온 미국.설령 현실에서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어도 '이상론'만큼은 튼튼했던 나라라는 믿음이 있었건만 이제 그 이상론을 대체하는 것이 선악론(善惡論)이라면 그다지 미국답지 않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고 해서 특별히 반미 감정을 가질 것도 없을 것이다. 강대국은 항상 이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룰'을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 있는 한,게다가 자신의 위치에 대해 불안해하는 한,강대국은 언제나 패트로나이징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적어도 한국으로서는 이런 현실론을 견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국민들은 동계올림픽 사건들에 흥분하고,'악의 축'발언에 불안해하고,미국과 걸린 사안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런가하면 여전히 대미 수출은 잘해야 하고,수입 압력은 적절히 지켜야 한다고 한다. 마음으로 싫고 입으로는 싫다고 말해도 영어 배우기와 유학 열풍 등 어떻게든 미국 영향권 안에서 놀겠다는 욕구도 존재한다. 이게 또 한국이다. 우리가 미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복잡다단하다. 외교적 대미 관계에서는 '눈치 작전'이고,경제적 대미 관계에서는'견제 작전'이고,개인적인 대미관계에서는 가까울수록 좋다는 '친밀 작전'이고,그런가 하면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사안에서는 '반미 작전'이다. 우리의 이런 대미 태도가 과연 그리 건강한 것인지도 의문은 의문이다. 이 모든 태도 밑에는 '어째서 강대국이…'하는,미국을 일단 강대한 나라로 상정하고 '어떻게 이럴 수가…'하는 심리가 깔려있다. 과연 미국은 '강대국'이기만 한 것일까. 우리는 미국을 어떤 고정 상태,궁극적 상태,이상적 상태로만 보지말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강대국이어서 더 불안해하는 상태의 나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완전히 믿을 필요도 없고 전혀 불신할 필요도 없는. 미국의 분발도 기대한다. 밉건 곱건 미국이라는 나라는 튼튼해야 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바라건대 미국이 그 좁혀지는 패트로나이징 아메리카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미국이 진정 '팍스 아메리카나'를 원한다면 적어도 '지배적'은 아닌 이 시대에 맞는 좀 더 진보적 방식으로의 팍스 아메리카나 전략을 키우기 바란다. 물론 한국이 하나의 마음으로 통일되지 않듯 미국도 하나의 미국만은 아니다. 세계 역학관계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반·친 그 어느 극단에도 빠지지 말고 적절히 밀고 당기자.미국도 한 나라다. jinaikim@seoulforu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