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02 재도약을 위한 경제계의 제언'이란 선언문을 채택한 것은 부당한 정치자금을 둘러싼 정치권과 재계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전경련이 이번 제언에서 정치권과 각계에 바라는 사항의 첫번째 항목으로 '돈 안드는 선거문화'를 강조하고 기업 자율 실천사항의 첫번째로 '부당하고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한데서도 이같은 뜻을 읽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올해 지방자치단체 및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 모금으로 생길 수 있는 국민 경제의 주름살을 제거하는 한편 경제정책이 정치논리에 의해 왜곡돼 경제 회복이 늦춰져선 안된다는 점을 호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선거로 인해 경제에 불필요한 희생이나 비용을 안겨줘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전경련은 이번 선언을 계기로 일반 국민들은 물론 정치권으로부터도 '정치자금 창구'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 "정당한 정치자금만 내겠다는 것은 개별 기업들의 판단에 따라 선호하는 후보에 대해 정당한 방법으로 낼 수 있다는 것이지 전경련 차원에서 돈을 걷어 후원회 등에 내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전경련이나 대기업 회장들이 '정치자금 독립선언'을 한 적은 있었지만 전경련 최대의 의사결정기구인 '정기총회'를 통해 공식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전경련이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창구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전경련이 '정치자금 모금'이란 사슬에서 벗어나겠다고 처음 선언한 것은 지난 92년초.유창순 당시 전경련 회장은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일부 기업주들이 개인적 친분에 따라 소액을 지원하는 일은 있겠지만 경제단체에서 돈을 모으는 일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 최종현 SK 회장도 93년 2월 전경련 회장 취임사를 통해 비공식적인 정치자금을 걷지 않겠다고 거듭 천명했다. 이처럼 전경련은 선거를 앞두고 여러차례 정치자금과의 단절을 밝혀왔지만 이번의 선언은 부당한 정치자금을 마련하기가 제도적으로 어려워졌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경영이 투명해지고 소액주주와 사외이사의 권한이 강화돼 투명하지 않은 자금을 조성하거나 전달하는 일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전경련은 이번 '제언'을 통해 올해 잇따른 선거를 '정책 대결'로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치권에 표를 의식한 선심성 선거공약을 자제해 줄 것을 주문한 것이나 경제 회복을 위한 전략지역과의 조속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추진을 촉구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다. 아울러 전경련은 한국경제연구원과 함께 '정치권에 바라는 경제정책 과제'를 발굴해 여·야 정치권에 제시함으로써 선거공약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설 방침이다. 현재 한경연은 오는 3월말을 목표로 정책과제 발굴작업을 진행중이다. 이번 과제에는 시장경제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제도보완책이 폭넓게 담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계의 이같은 호소와 주문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겉으로는 환영하고 있지만 선거 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다. 어찌 됐든 앞으로 대선주자가 가시화되고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돈 안드는 선거문화'를 창출하고 정책 대결을 이끌어내려는 재계의 노력도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손희식·이심기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