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통상전선의 최전방에 있는 워싱턴DC의 외교관과 주재원들은 요즘 다소 고무돼 있다. 한반도 관련 뉴스의 초점이 북한에 맞춰져 있는 탓에 한가로워서가 아니다. 자동차 수입불균형에 대한 미국 자동차업계와 정부관계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현대자동차의 미국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이들의 불만은 오히려 높아가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그런데도 이들이 안도하는 것은 철강수입규제 조치를 준비하고 있는 미국 정부에 대한 현지 언론의 강한 견제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자국 철강업계의 요구를 토대로 오는 3월6일 한국을 비롯한 철강수출국에 대한 규제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수입관세를 최고 40%까지 물릴 것을 부시 대통령에게 건의해 놓고 있다. 그러나 규제발표 시한이 다가오면서 미국 언론이 이같은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일자 사설에서 정부를 공격했다. 40%의 관세율을 물리면 철강수입가격이 10% 정도 비싸져 철강을 주요소재로 쓰는 산업분야에서 줄잡아 8만6천명의 실업자가 생긴다고 주장했다. 전체 종업원이 10만명도 안 되는 철강업계를 보호하려다 더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며칠 전엔 뉴욕타임스가 거의 같은 논조의 사설을 실었다. 이들은 영어를 못하는 나라 국민들도 부시 대통령이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것만은 금방 알아챈다는 조크까지 섞어가며 '자유무역을 부르짖으면서 새로운 무역장벽을 치는 우를 범하지 말것'을 촉구했다. "규제조치가 임박해서인지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주요언론의 견제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CITAC 같은 철강을 주요소재로 쓰는 수요업체연합회 같은 곳의 로비도 활발해지는 것 같습니다" 주미대사관 관계자는 강경했던 초기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한국을 찾았다. 북한문제에 치여 경제이슈는 곁가지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철강수입규제만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의 목소리가 아니라 미국 언론의 주장을 전해주기만 해도 된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