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영화 '반지의 제왕'(피터 잭슨 감독)이 제74회 아카데미상(3월 14일) 13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가장 많은 부문에 후보로 올랐던 작품은 '이브의 모든 것'과 '타이타닉'(각 14개), 실제 상을 많이 거머쥔 작품은 '타이타닉'과 '벤허'(각 11개)였다. '반지의 제왕'은 환상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작가 톨킨(1892∼1973)이 옥스퍼드대(영문학) 교수로 있던 1954년 발표한 소설이다. 국내엔 영화로 알려졌지만 구미에선 오래 전부터 '20세기 영미문학 걸작 25'에 꼽혀온 스테디셀러다. 영화는 '뉴라인 시네마'가 뉴질랜드에 대규모 세트를 짓고 3편을 동시에 제작했다. 이번에 개봉된 '반지원정대'가 1편이고 2,3편은 올해와 내년 크리스마스에 잇따라 선보이리라 한다. 1편의 내용은 간단하다. '악마왕 사우론이 암흑의 세계에서 되살아나 세상을 지배하는데 필요한 절대반지를 찾는다. 사우론을 막는 길은 반지를 불의 산에 넣어 없애는 것뿐. 난쟁이인 호빗족 청년 프로도는 악을 물리쳐야 한다는 믿음과 용기만으로 험난한 여정에 나서고 이를 요정 마법사 인간전사가 돕는다' 단순한 권선징악적 성격의 이 영화가 인기를 끄는 데는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게임같은 내용에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이용한 사실적 표현및 장대한 스케일 덕이 클 것이다. 편당 1억달러를 들였다고 하는 만큼 실제 전편에 눈요기감이 넘친다. 그러나 볼거리만으로 3백6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곤 보기 어렵다. 영화는 다양한 군상을 통해 반지의 힘을 얻고 싶은 본능과 없애야 한다는 이성 사이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탐욕과 배신도 있지만 우정과 사랑으로 역경을 이겨내는 길, 갈등 끝에 운명을 받아들이고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이 아무리 참혹해도 '선이 이긴다'는 믿음을 심는다. '반지의 제왕'이 '타이타닉'의 최다수상 기록을 깰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청소년 대상의 영화에 사람살이의 기본 덕목을 목청 높이지 않고 삽입해낸 힘만은 오래 기억될 게 틀림없지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