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을 열거하라는 문제가 나왔다면 정답은 무엇일까. 이슬람 과격파들의 테러 가능성이나 아르헨티나 사태? 아니다. 일본경제다. 지금 일본은 3월 대란설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올해로 10년째 불황인데 왜 올 3월인가. 일본 기업의 상당수는 3월 말이 결산이다. 그러나 결산결과는 뻔하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기업부도가 있었고,기업의 70%가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결산뉴스가 (대부분 미리 짐작하고 있다 해도 현실화되는 경우) 실물경제나 금융시장에 새삼스럽게 충격을 줄 것이다. 일본은 또 4월1일부터 예금자 전액보호제도를 폐지하고 1천만엔 이하의 예금만 보호해 주기로 예정하고 있다. 당연히 예금인출 사태가 예상된다. 3월부터 인출사태가 벌어지면 결산뉴스와 함께 일본의 신용등급 하락,엔화가치 하락에 따른 디플레 현상 심화,증시침체 등 악재가 어우러져 공황심리가 팽배해질 것이다. 시가평가제도 악재다. 일본은 올 4월부터 주식의 시가평가제를 실시하기로 했는데 이 경우 은행권의 부실은 장부에 그대로 반영될 것이다. 가뜩이나 부실한 은행들로서는 타격이 크다. 이런 시나리오가 점차 현실로 다가와도 일본 정부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일본은 지난 10년 간 경기침체를 겪어 왔고 경기회복을 위한 처방은 모두가 알고 있다. 구조조정을 하고 금융개혁을 하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부실기업을 퇴출시키고,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의 부실채권을 정리하라는 것이다. 답을 가르쳐 주고 베껴 쓰라는 시험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왜 베끼지도 못하는 것인가. 첫째,부실이 부실을 낳는 악순환구조다. 기존의 부실을 해결한다 해도 디플레 압력 때문에 기업가치가 하락해 다시 추가부실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일본은 왜 한국처럼 부실기업을 정리하지 못하는가. 실업자 양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예컨대 2조6천억엔의 부채를 안고 있는 유통업체 다이에가 무너지면 10만명의 실업자가 생긴다. 종신고용관행이 무너졌다 해도 이 정도 실업을 내고 견딜 정권은 없다. 둘째,구조조정에 정치논리가 지배적이다. 일본정부는 지난 10년 간 11차례의 부양책을 썼지만 전혀 약발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재정자금이 경기회복을 위해 사용되기보다 자민당의 표밭지역에 중점적으로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셋째,일본 특유의 유착관계도 문제다. 일본의 은행과 기업은 뿌리 깊은 유착을 하고 있고,기업들은 상호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경영감시기능이 없다. 재정수단을 소진한 일본정부가 추가로 쓸 수 있는 대책은 거의 없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원래 중앙은행의 기본적인 임무는 물가를 잡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는 인플레 위험은 없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 압력을 해소하는 것이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일본은 3년 연속 소비자 물가지수가 하락하고 있다. 기업은 가격하락으로 경쟁력을 잃게 되며,개인들은 소비를 하기보다 저축을 하는 게 유리하다. 이래서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경기는 더욱 침체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이같은 속수무책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일본은 우리 수출물량의 10%이상을 사주는 고객이며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경쟁자다. 일본경제의 침체로 대일 수출이 줄어들고,엔화가치 하락으로 우리 주력산업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이미 겪고 있는 일이다. 현재의 환율이 1년 간 지속되면 우리 성장률이 0.3%포인트 이상 하락하고,경상수지는 18억달러 이상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이즈미 정부의 정책방향으로 판단컨대 앞으로 상당기간(정권이 바뀔 때까지) 현재와 같이 '말로만 하는 구조조정'을 계속 할 것 같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비가격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엔고시절 일본기업들은 '달러당 80엔이 되더라도 견딜 수 있다'고 했고 실제 그것을 해냈다. 우리기업들도 환율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달러당 1백50엔도 견딜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