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siness Week 본사 독점전재 ] 엔론 스캔들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세계관을 깨끗이 바로잡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올바른 교훈이 얻어질 수 있을까. 엔론은 정치적인 스캔들로 부시 행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엔론만큼 부시 가문이나 공화당과 가까운 회사는 없었다. 자사에 유리하도록 관련 규정이 정해지도록 체제를 이용하는 데 엔론만큼 정치적인 회사도 없었다. 백악관은 대통령이 기울어져 가는 엔론을 구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캔들의 실체는 엔론이 각종 룰을 부정하게 조작해 사세를 확장해 나가는 데 공화당과 당의 세계관이 어떤 도움을 주었느냐에 있다. 더 근본적인 스캔들은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다. 엔론은 시장의 자기 정화 능력을 믿는 시장근본주의의 전형이다. 공화당원들은 이 주의의 열렬한 변호사들이다. 중개회사로서 엔론은 자사를 순수한 자유시장의 정수라고 주장했다. 실제로는 엔론은 정실(情實)주의와 정치권과의 관계를 이용한 영향력 행사등에 열중했다. 또 내부자들에 유리하도록 각종 규정을 부정한 수단으로 조작했으며 능률적인 시장의 관건인 투명성을 근본적으로 약화시켰다. 투명성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규제를 요구한다. 규제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다. 자본주의 자체가 금융자산이나 지식재산에 대한 권리부터 시장체제의 효율성을 해치는 기회주의적인 관행에 대한 제한 등을 관리할 규정들을 요구한다. 지난 30여년 동안 시카고대 출신의 주류경제학(시카고학파)은 순진한 학생들과 언론인들에게 공리(公利)같은 것은 없다고 가르쳐 왔다. 또 이기적이고 사적인 이익들의 총합이 가장 능률적이고 최선인 결과를 낳고 정부가 할 일은 끼어들지 않는 것뿐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개입을 증오하고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조차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같은 시스템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기업가들이나 상인들이나 성인은 아니다. 규제완화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어떤 규정을 폐지하는 결정은 어떤 사항을 규제하는 결정만큼이나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엔론은 이용할 것은 다 이용했고 얻고자 하는 것은 거의 다 얻어냈다. 엔론은 회계장부만 조작한 게 아니다. 엔론은 자사의 광범위하고 막강한 정치력을 이용해 규제시스템 자체를 조작했다.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의 한 위원장이 엔론의 걸림돌이 됐을 때 케네스 레이 엔론 회장은 전화 한통을 걸었고 방해자는 사라졌다.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위원장을 지냈던 웬디 그램은 퇴임 직전 에너지파생상품에 대한 반(反)사기 규제 조항을 철폐시킨 뒤 엔론의 이사가 됐다. 우리는 대공황 때 자본주의는 스스로 규제하지 못한다는 광범위한 교훈을 배웠다. 당시에는 개혁적인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었다. 이번에는 당시의 파멸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은 없다. 또 공화당 정부는 여전히 자유방임주의와 정실정치를 옹호한다. 9·11 테러공격이 전세계적인 테러의 위협이었던 것처럼 엔론사태는 시장근본주의의 협박이다. 둘다 모두 매우 값비싼 ''모닝콜''이었다. 정치 지도자들은 자본주의의 심장부에 대한 급습인 엔론사태에 대해 9·11 테러공격 못지 않은 주의와 관심을 쏟아야 한다. 정리=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이 글은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의 공동편집인 로버트 쿠트너가 미국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기고한 ''Enron:A Powerful Blow to Market Fundamentalists''란 제목의 칼럼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