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무한 책임론" 정부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공무원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이다. 5개년 경제계획이 한창 추진되던 70년대에나 어울림직한 얘기지만 요즘도 심심찮게 듣게 된다. 언필칭 "시장중심의 경제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공무원 스스로 내세우는 정책의 기본 방향이면서도 상당수 고위 공무원들은 아직도 무한 책임론의 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20년도 더 전에 첫 사무관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 논리는 강조됐으리라. 현대투신 매각협상,결렬 선언을 지켜보면서 이 말이 거듭 떠올랐다. "한번 시작한 일인데 끝을 내야지" "공적자금이 들어가는데 어떻게 업계(현대 증권3사)에 맡길 수 있나" 이런 뿌리깊은 관료의식은 이번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공무원의 무한책임론에서 볼때 협상을 도중에 접는 것이나 외부 전문가를 처음부터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무한 책임"이라는 기본을 위반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공직내부에서는 능력부족으로 비춰질수도 있다. 현대투신 매각협상을 맡은 공무원들도 그렇게 판단했을지 모른다. 다행이 이번 협상은 결렬이 됐다해서 당장 정부예산에서 손해는 없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년반 동안 금감위가 협상에 쏟은 노력과 기회비용,국내외 시장에서 신인도 회복에 지장을 준 측면까지 계산해본다면 이 손익계산은 달라질 수 있다. "헐값 매각보다 차라리 협상결렬은 잘한 일"이라는 공무원들의 주장은 이 점에서 아직은 이른 판단이다. 공무원들이 무한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서 내릴 때가 됐다. 정해진 법규내에서 유한 책임만 지는 것이 스스로 행동도 가볍게 하고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단,법규내 책임외 나머지를 시장(업계)몫으로 돌리려면 권한도 그만큼 비례해 넘겨줘야만 한다. 현대투신의 매각작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앞으로 협상장의 우리측 대표선수를 민간에서 외주해서 쓰면 어떨까. 금융과 협상을 잘아는 전문가들은 민간에도 적지 않다. 순수 민간인만의 대표단이 아무래도 미심쩍다면 민관 합동의 매각팀을 구성해보는 것도 좋겠다. "혼자 다 하겠다"고 고집하다 또 실기하는 것 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허원순 경제부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