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산업은 우리 정부가 수립된 뒤 줄곧 깊은 병을 앓아온 분야다. 그리고 사설학원들의 번창이나,조기 해외유학과 같은 증세들이 가리키는 것처럼 병세는 앞으로 나아지기보다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 병의 근본적 원인은 구매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가격기구를 통해 수급이 연결되는 다른 재화들과는 달리 교육은 ''배울 수 있는 능력''이라는 기준에 따라 배급된다는 사정이다. 지금 우리 교육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모두 이런 배급 제도에서 나온 부작용들이다. 사정이 그렇기는 해도 우리 대학들의 비효율성이 문제를 크게 키웠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비효율성의 작지 않은 부분은 대학들이 자신의 정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 대학은 학생이라고 불리는 고객들에게 교육이라고 불리는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지금 그 사실을 또렷이 인식하는 대학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대학들은,특히 대학의 종업원들인 교수들은 대학이 기업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바쁘다. 교육은 여느 사업들과는 다른 특별한 활동이며,자연히 경제원리만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의 효율성이 낮고 고객들이 불만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대학입시에서도 그 점이 잘 드러났다. 지금 우리 고등교육시장이 판매자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대학들이 보인 무지와 오만은 너무 컸으니,수험생들이 고객들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대학은 너무 드물었다. 내신성적과 수능시험성적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대학으로선 학생들을 뽑을 자료들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었다. 그러나 지원과 합격자 발표 사이의 기간은 무척 길었다. ''하루가 삼년''인 학생들과 부모들의 처지를 고려해 되도록 빨리 결과를 발표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논술시험을 본 뒤 한달 넘게 지나서야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선언해서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의 원성을 크게 산 대학도 있었다. 훨씬 심각한 것은 원가개념의 결여다. 신입생 선발과정에 드는 비용은 관련된 사람들 모두에게 순수한 손실이다. 따라서 선발과정을 되도록 간단히 해서 비용을 줄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거의 모든 대학들은 전혀 필요하지 않은 논술이나 면접과 같은 절차들을 추가해서 비용을 늘렸다. 내신성적은 세 해 동안의 수업에서 얻어진 능력과 품성에 대한 평가고,수능시험성적은 많은 교과목들에 대해 모든 학생들이 치른 객관적 시험의 결과다. 짧은 시간에 몇개 되지 않는 주제들로 치르고,그나마 채점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논술이나 면접이 왜 필요한가? 논술이나 면접에서 얻어진 수험생들에 관한 단편적이고 주관적인 정보들로 내신과 수능시험에서 얻어진 객관적이고 계량화된 정보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논술이나 면접이 수험생들에게 강요하는 물질적,정신적 비용은 엄청나다. 연구와 강의준비를 해야 할 교수들이 부가가치가 거의 없는 일들에 며칠씩 매달리는 터라 대학이 부담하는 비용도 언뜻 보기보다 훨씬 크다. 왜 그런 불필요한 비용을 없애지 않는가? 만일 교육산업이 효율적 시장이라면,그렇게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려 하지 않는 대학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점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이번 입시에서 성균관대가 수험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는 사실이다. 예비소집이 없었고,논술은 인문계에 국한됐으며,합격자 발표도 비교적 빨랐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성균관대가 경영원리에 따라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끝내서 다른 대학들이 벤치마킹을 한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좋은 기업은 고객들이 이내 안다. 이제 우리 교육시장에도 세계화의 바람이 거세어져 대학들은 지금까지 누린 과점적 지위를 빠르게 잃고 있다. 이미 학생들은 좋은 대학들을 찾아 해외로 조기 유학을 떠나고,경쟁력이 높은 외국대학들은 들어온다. 자신들이 교육이라는 재화를 파는 기업이라는 사실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대학들의 설 땅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