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채무자들이 마지막으로 의존하게 되는 '소비자파산' 신청이 지난 10월말에 벌써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최근의 경제적 어려움이 외환위기 때에 못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자칫 파산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개인 신용불량자가 지난 9월말 현재 2백5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 경기가 조속히 회복 국면에 들어서지 않을 경우 소비자파산 급증 추세는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 급증하면서 유형도 다양해지는 파산 신청 =백화점에서 일하다 외환위기 때 퇴직한 뒤 지금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한 A씨는 최근 카드 빚 4천여만원을 갚을 방법이 없어 서울지법에 파산을 신청했다. A씨는 "퇴직후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사용해 생활비를 충당해 왔는데 더 이상 빚을 갚을 수 없어 결국 파산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학원을 운영하던 B씨도 학원운영 경비 등을 위해 5개의 카드를 돌려쓰다 7천여만원의 빚을 지고 파산신청을 했다. A씨와 B씨의 경우처럼 서울지법에 올들어 소비자파산을 신청한 사람들은 월별로 지난해 같은달 대비 1백∼5백%씩 늘어났다. 이에 따라 서울지법에만 올 상반기에 이미 1백30건이 접수돼 지난해 전체 수치인 1백31건에 육박했고 급기야 지난 11월 2백60건에 도달해 사상 최고치인 2백57건(99년)을 넘어서게 됐다. 건수 자체가 급증했던 것과 함께 올들어서는 신청자들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사업이나 주식투자 실패, 또는 빚 보증을 잘못 선 중산층들이 주로 신청을 하던 '전통적' 유형은 물론 농민 노점상 노숙자, 심지어 외국인 등도 파산 신청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 법조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몰라서 못했던 사람들이 많았으나 최근 들어서는 소비자파산 제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렇게 볼때 파산 신청자들이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 왜 늘어나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빠진 경제 상황이 가장 큰 이유다. 경기침체 후 경영하던 사업이 망하거나 해고를 당하는 등 여러 이유로 과도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지난 1∼2년간 정부가 세수확대를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하는 틈을 타 카드사들이 무분별하게 카드발급 경쟁을 벌인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서울지법 파산부의 한 판사는 "전체 신청자 가운데 신용카드로 인한 파산 신청자들의 비중이 지난해 40% 가량에서 올들어 70% 정도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난 9월말 현재 신용카드 관련 신용 불량자가 95만명"이라며 "이들은 언제 파산자가 될지 모를 '시한 폭탄'"이라고 덧붙였다. ◇ 경기 조기회복이 관건 =지금같은 소비자파산 행렬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기가 조기에 살아나야 한다. 경기회복이 더디거나 더 나빠질 경우 신용카드에 의존하는 채무자, 또는 '거품'이 꺼진 벤처기업 경영자 등의 파산신청 사례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기가 저점을 통과해 완연한 회복 국면으로 들어서기까지는 소비자 파산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게 파산부의 관측이다. 경기가 회복된다 해도 개인 채무자들의 상황이 좋아지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차가 있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책임연구원은 "가계 대출의 부실화는 고용 수준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며 "파산자 속출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기가 되살아나 실업률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