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 선언이 불가피해 보임에 따라 회복기미를 보이던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다. 데 라 루아 대통령이 사임하고 제1 야당인 페론당이 국정을 장악했지만 고질적인 경제위기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란 여간 어렵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일본 엔화가치 급락, 반도체 철강 등 주요산업의 공급과잉 등 세계경제 안정을 위협하는 불안요인이 곳곳에 산적해 있어 자칫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번 아르헨티나 사태에서 주목할 점은 두가지다. 하나는 환율이 경제실상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국가경제에 엄청난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는 1천3백20억달러에 달하는 외채, 방만한 재정운용, 뿌리 깊은 정치갈등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경제위기에 시달려 왔다. 그중에서도 페소화가 달러화에 1 대 1로 연동돼 지나치게 과대평가된 것이 이번 위기를 불러온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때문에 아르헨티나 기업들은 수출경쟁력을 잃고 잇따라 도산하면서 실업자가 급증했다. 지난 97년 우리에게 닥친 외환위기도 90년대 중반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와 엔화약세 반전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렇게 볼때 최근 엔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에 대해 시급히 대응책을 마련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가지 강조할 점은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국제경제기구가 특정국의 경제위기를 해소하는데 좀더 유연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아르헨티나가 자구노력을 게을리한 탓이 크지만, 긴급자금 12억달러를 비롯해 합의된 구제금융을 제때 지원했다면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게다가 경제기반이 허약한 아르헨티나에 긴축정책을 요구한 것도 무리였다. 이때문에 저소득층의 생활고가 극심해진 것은 물론이고 외환위기 직후 우리도 경험했던 소비위축과 고금리로 인한 기업도산, 실업자 사태, 재정적자 확대 등이 아르헨티나에서 그대로 반복됐다. 페로니즘으로 대표되는 인기영합적인 경제정책으로 인한 재정파탄과 미온적인 구조조정이 아르헨티나 경제를 망쳤다는 사실을 정부와 정치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상황이 어려운 마당에 내년 선거를 앞두고 당리당략으로 선심성 시책을 남발하거나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을 소홀히 하는 사태가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는 점을 아르헨티나 사태에서 교훈 삼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