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성탄절은 싱겁다. 교회와 성당의 신자수가 인구(1억2천6백여만명)에 비해 워낙 적다 보니 성탄절을 대하는 국민들의 감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진지하기 어렵다.도심 한복판에도 불우이웃돕기 구세군 자선냄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건을 파는 백화점과 기업들의 입장은 영 다르다. 결코 놓칠 수 없는 엄청난 대목이다. 백화점 매장에서는 지난 달 중순부터 캐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빌딩 옥상과 외부 역시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으로 옷을 갈아입은 지 오래다. 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예배·미사에는 참석하지 않아도,주고 받을 선물을 준비하며 성탄절을 손꼽아 기다린다. 돌아가는 현상을 보노라면 일본의 성탄절은 판촉행사와 선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올해의 성탄절은 예년과 분위기가 다소 다르다. 한 백화점 조사에 따르면 여성들이 애인이나 남편으로부터 받고 싶은 선물의 평균가격은 2만5천엔으로 95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남성들 사이에서는 선물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답도 수두룩했다. 불황 도산의 후유증으로 선물시장도 얼어붙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어린이를 포함한 가정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광고회사 하쿠호도가 젊은 주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자녀용 선물을 준비하겠다는 응답이 96%로 작년보다 20%포인트나 높아졌다. 일본 언론은 이에 대해 형식적인 선물 주고 받기가 줄거나 작아진 대신 '가족 가정'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쪽으로 돈 씀씀이가 달라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왕세자빈의 출산으로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도 가장들의 '가정 회귀'를 이끄는 계기가 됐다고 언론은 풀이한다.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듯,백화점가에선 어린이와 함께 만드는 선물이 각광받으며 가장들의 조기 귀가를 재촉하고 있다. 그리스도 신앙과 이웃에 대한 온정의 손길에서 일본을 압도해온 한국과,상업적 분위기의 성탄절을 보내 온 일본.2001년 일본의 가장들이 '가정 회귀'를 화두로 내놓은데 대해,한국의 가장들은 어떤 답안을 제시할지 궁금하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