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계기로 중국 관광객 10만명이 한국을 방문하리라는 예상이다. 더 많은 중국인들이 이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일부러 중국의 경기를 서울 광주 서귀포 등 한국에서 치르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자 선택된 3개 도시는 환호하고,탈락한(?) 도시들은 관광수입이 줄어들까 봐 걱정한다는 보도다. 그런데 한가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이번 기회에 중국인들에게 빼앗긴 우리 측우기(測雨器)를 되찾아 오자는 것이다. 이 기회가 '과학사 바로 알리기'에 대단히 중요한 기회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민족의 과학적 재능을 대표하는 세종 때의 발명품으로 널리 알고 있던 측우기를,중국과학사는 중국의 것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중국에는 과학사가 많이 연구되고 책도 숱하게 출판돼 있는데,중국과학사를 다룬 모든 책이 측우기를 중국 것이라 써놓고 있다. 심지어 20년 전에 나온 중국기상사(中國氣象史)라는 책은 표지에 측우기를 중국기상학의 유물 중 하나로 그려 넣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중국 학자들이 측우기를 중국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는 하다. 1910년 중국이 외국에 소개한 논문에 측우기 사진이 실려 있다. 그 사진을 잘 보면 측우기를 받쳐 놓은 측우대(測雨臺)가 한자로 써있고,그 옆에 좀 작은 한자로 '건륭경인오월조(乾隆庚寅五月造)라는 7글자가 써있다. '건륭 연간의 경인년 5월에 만들었다'는 뜻이다. 건륭이란 중국 청나라 때의 연호로,건륭제(乾隆帝) 고종(高宗)이 임금 자리에 있던 1736년부터 1795년까지의 60년 간을 말하고,그 가운데 경인년은 1770년을 가리킨다. 물론 측우기는 세종 때인 1442년 조선에서 처음 발명됐지만,그 때부터 1770년까지 사용하던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1770년에 만든 이 측우기가 논문에서 '가장 오래된 측우기'로 세상에 소개되기 시작한 셈이다. 이 사진을 본 중국 학자들은 당연히(?) 건륭이란 연호를 보고 이것을 중국 것이라 판단했을 터이다. 중국 학자들로서는 조선이 1770년에 중국 연호를 써서 무엇을 만들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면 왜 우리 측우기에 중국연호가 기록됐는지 아마 대강 짐작할 것이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별도의 연호를 만들어 사용하지 않았다. 중국연호를 그대로 함께 쓴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 영조(英祖)46년에 해당하는 1770년 조선에서 만든 우리 측우기에 중국연호가 표기됐던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한국역사를 공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보니,조선시대 한국사람들이 중국연호를 쓴 것을 알 까닭이 없다. 그래서 측우기는 1920∼30년대부터 중국 것으로 둔갑하기 시작,과학사가 활발해진 1970년대 이후 모든 책에 자리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측우기'라는 이름이 우리의 세종실록에는 여러 차례 나오고,그것이 어떤 모양과 크기로 만들어졌는지 자세한 설명도 실려 있다. 또 그 후의 실록과 다른 기록에도 측우기를 사용한 기록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중국역사 기록엔 아예 '측우기'라는 말조차 없다. 오죽하면 측우기를 말한 어느 중국책에 '청나라 때 이 측우기를 만들어 주변국가들에 보냈지만,지금은 조선에만 남아 있다'는 궁색한 설명을 만들어 붙여 놓았을까. 물론 측우기 유물은 중국에는 없다. 명백히 측우기는 우리나라 세종 때 발명된 우리 유물이다. 중국인들은 단순한 오해에서 그것을 자기들 것인 줄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중국책만 읽고 세계과학사를 연구하는 외국 학자들은 모두 측우기를 중국 것으로 치부하게 돼 버렸다. 측우기 되찾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이 그것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많은 중국 관광객들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든 알리면,조금씩이나마 그 영향이 중국의 과학사 서술에 미치게 되지 않을까? 측우기의 큰 모형을 만들어 여기저기 전시하고,그것을 설명하는 글을 여기저기 퍼뜨리면 효과가 있을 듯하다.특히 중국인들이 더 많이 찾아 올 서귀포 광주 서울의 축구장이나,그 주변의 관광지·유원지에서 이 일은 더 조직적으로 추진될 수 있지 않을까? 정말로 측우기 되찾기는 돈벌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이다.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