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음은 어떤 계통을 이어 받아 만든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루어진(以成於自然) 것입니다" 정인지는 훈민정음해례본 서문에서 훈민정음이 어떤 문자의 영향도 받지 않고 독창적으로 창안된 문자라는 것을 이런 표현으로 강조해 놓았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이렇듯 독창적인 정음창제라는 국가적 대사업을 누가,언제부터,어떤 과정을 거쳐 수행한 것인지 기록이 전혀 없다. 공표하기 전까지 정음의 창제사실은 철저히 숨겨졌다. 정음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세종실록'(1443년 12월30일)에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셨다"는 기사뿐이다. 세종을 중심으로 집현전 학자들이 협력해 창제했다는 협찬설이 통설처럼 돼 있으나 추측에 불과하다. 세종 친제설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음을 누가 만들었든 당시 국어를 문자화하기 위해서는 중국음운학에 관한 지식을 원용했을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정음의 기본적 제자원리(制字原理)는 한자처럼 사물의 모양을 본뜨는 '상형(象形)'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 정인지는 자음은 발음기관 상태를,모음은 역학의 원리를 응용해 자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초(鄭樵)가 한자의 자획을 해설한 '육서략(六書略)'의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에는 ㄱ ㄴ ㅁ ㅂ ㅅ 등 정음의 자음자와 비슷한 것들이 많다. 그래서 정음의 자형은 이 책을 원용했다는 설이 있었다. 한국구결학회 학술대회에서 고려시대 불경 등 고서를 쉽게 읽기 위해 본문에 토를 달 듯 뾰족한 필기구로 보이지 않게 눌러 찍었던 각필(角筆)부호가 정음의 자음과 모음의 기원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자형이 비슷한 예가 17개나 된다는 주장이다. 각필연구가 일본 중국보다 일천한 분야라서 앞으로 학계의 철저한 검토를 거쳐야 할 새 학설이긴 하다. 제자방식을 원용했다 해서 정음의 독창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형의 기원이 고려 때부터 전통적으로 써오던 각필이었다면 '훈민정음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정인지의 표현에 더 자연스런 의미가 부여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고광직 논설위원 kj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