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사랑하는 시민단체들이 북한산 관통도로 건설을 저지하는 '실력행사'에 들어갔다.이들은 당국의 허가를 얻어 시공이 이미 이뤄지고 있는 도로공사를 현장에서 몸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인간사회에는 온갖 상충하는 선호(選好)와 이념이 존재한다. 민주사회에서는 그들 중 누구의 가치에도 남을 추월하고 무시하는 권리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이 갈등관계를 조절하는 제도와 절차가 있는 것이다. NGO는 이런 민주사회의 질서를 지키는 파수가 될 것을 자처한다. 그런데 우리의 시민단체들은 그들의 문제를 법원이나 관청에 갖고 가기보다,공사현장 사람들과 육탄으로 다투어 대항할 것을 택한 것이다. 이것을 보도하는 뉴스매체 또한 '편리한 도로가 먼저일까요? 환경보전이 우선일까요?' 두 당사자의 입장차이 조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사회의 이러한 시민의식 수준의 원죄는 물론 믿지 못할 공권력에 있다.북한산 터널 시공사는 차후 환경단체의 공사방해피해배상을 청구하는 법적 절차를 밟아야겠지만,당장은 공익적 건설사업이 지연되지 않도록 공권력의 도움을 구해야 함이 순서다.그러나 공권력이 부른다고 오고,왔으면 제 직무를 수행하는가. 얼마 전 집달리를 동원해 무허가건축 철거를 강행하는 현장에서 경찰서장이 오히려 땅주인을 핀잔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아무리 허가 받은 철거라도 주거자 사정을 봐서 협의해 해야지!" 그는 인기 없는 공권력의 집행자 자리를 걷어차고 스스로를 판관(判官)으로 임명했다. 지난 여름에는 고속도로휴게소에서 노점상들과 단속단원들간에 몸싸움이 벌어져 그 와중에 노점상이 단속원을 승용차로 밀어붙여 사망케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도로공사가 10여차례 경찰에 노점상 단속을 요구했으나,공권력의 도움을 얻을 수 없게 됐으므로 고속도로휴게소협회에 종용해 월남참전용사협회와 월 1억원 연 12억원에 단속계약을 맺게 했다는 것이다. 카지노,나이트클럽 같은데서나 있는 줄 알았던 조직의 보호를 이제 공기업도 요구하는 사태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한동안 러시아를 '마피아 경제'라고 비하했다.국가는 원래 기업이 생산할 공적 인프라를 제공하고,이렇게 생산에 기여한 대가를 국민경제의 생산 및 유통과정에서 떼어간다.그래서 국민회계계정(national account)에서는 국민총생산에서 정부가 자기 몫이라고 떼어가는 간접세를 공제한 부분을 국민소득으로 삼는다. 그런데 러시아는 중앙계획경제를 수행하던 정부기능을 결딴내고,이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시작하던 상태다.국가에 세금을 내봐야 내 기업활동에 필요한 보호를 얻을 수 없고,이를 마피아가 대신 제공하므로 기업은 정부 대신 마피아에 보호비를 바치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다.공권력이 없는 러시아에 마피아도 없다면 기업활동이고 시장경제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과연 우리사회는 러시아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 것인가. 공권력행사를 안하는 정부라면 세금을 요구할 권리도 없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공권력은 끊임없이 오용(誤用)돼 정당성과 권위를 스스로 훼손했다. 부도덕한 정권이 공공의 이익을 지킬 도구를 집권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고 민중을 압제하는데 사용했던 사례가 많아 이에 거부하고 대항하는 것이 의(義)로 행세되곤 했었다. 그 공권력이 아직 온전히 환골탈태한 바도 아닌데,여기에 정권의 인기주의와 행정의 복지(伏地)주의까지 가세해 우리는 오늘날 무력(無力) 극치가 된 공권력 모양새를 보고 있다. 농민 노동자 교육자 시민단체 할 것 없이 모두가 무단으로 경관에게 달려들고,전경을 구타하고,고속도로를 점유하며,아집·독선과 이기주의가 깃발을 날리는 세상 꼴을 오늘도 내일도 보는 것이다. 공권력이 낮잠 자는 민주주의는 떼쓰고,주먹쓰고,막가는 소수가 시민 다수를 지배하는 질서이다.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하는 정권에 시민다수의 지지가 있을 수 없다. 공권력에의 대항을 선택하는 집단들은 흔히 "우리가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요,이 방법이 아니면 통하지 않으니까 궁여지책이지요"하고 변명한다. 그들이 정말로 모르는 것은 그 사려없는 활동이 바로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들고 급기야 독재권력에 문을 열 구실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kimyb@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