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 신무림제지 사장은 위기때 힘을 내는 '승부사'다. 지난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상당수 제조업체들이 설비를 축소하고 매각하는 와중에서 IFC 등 외국투자기관을 찾아가 8천만달러의 외자유치를 이끌어 내고 공장증설을 완료하면서 얻은 닉네임이다. 그 자신은 "평범한 전문경영인일 뿐"이라고 애써 강조하지만 그의 닉네임은 지난해와 올해를 거치면서 더욱 굳어졌다. 신무림제지는 지난해 1백억원에 육박하는 사상 최대 손실을 기록했지만 올들어선 10월말까지 오히려 사상 최대인 1백50억원의 경상흑자를 기록중이다. 최악의 돌발변수만 터지지 않는다면 올해 2백억원의 경상이익은 무난할 것으로 신무림제지는 자신하고 있다. 이 사장은 위기를 항상 기회라고 생각한다. "위기상황은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남도 어렵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제지업계가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퍼진 지난해 하반기를 이 사장은 기업가치를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했다. 지난해 하반기는 잘 나가던 종이 수출이 처음으로 막힌 시기였다. 중국 현지에서 초대형 제지회사 APP가 종이를 본격적으로 쏟아내자 한국산 종이를 수입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출항하는 배에서 끌어내려진 종이는 국내시장에 풀렸다. 종이가격이 곤두박질쳤고 제지회사는 최악의 성적표를 투자자들에게 낼 수밖에 없었다. 이 사장은 우선 위기의 원인을 파악했다. 도출한 결론은 국내 수급이 항상 불안한 상태에서 저가시장인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신무림제지의 수출물량중 40%는 중국시장에 보내졌다. 원인이 이처럼 분명하다 보니 처방도 명쾌했다. "수출을 늘리고 수출선을 다변화하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이전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중동시장을 뚫기 시작했다. 칠레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으로 남미와 아프리카에도 종이를 내보냈다. 까다로운 미국시장 수출물량도 대폭 늘렸다. 이에 힘입어 수출 절대물량이 지난해 하반기 월 1만5천t에서 올 들어선 2만t으로 늘어났다. 반면 수출중 중국 비중을 20% 수준으로 낮췄다. 10월 말 현재 신무림제지의 최대 수출시장은 미국(비중 30%)이다. 신무림제지는 생산량 중 55% 이상을 외국으로 실어 보내다 보니 국내에서 저가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사장은 "올 3월부터 일정 수준 이상 마진을 내지 못할바에야 팔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신무림제지의 이같은 시장접근론을 다른 제지업체도 벤치마킹해 국내시장 판매가격 안정이 이뤄졌다. 때마침 국제 펄프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하더라도 t당 7백달러를 오르내리던 국제 펄프가격은 최근 t당 4백달러 이하까지 떨어졌다. 수출 증가, 내수 판매가격 안정, 원자재가 하락의 3박자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에 힘입어 신무림제지의 경상이익은 △1.4분기 마이너스 61억원 △2.4분기 플러스 76억원 △3.4분기 플러스 86억원 등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10월 이후엔 월 50억원 가까이 경상이익을 내고 있다. 이 사장은 위기이자 기회의 시기가 2004년께 또다시 찾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04년 제지상품 무관세가 시작되면 외국 대형제지업체와의 한판 격전이 벌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제지 수입관세는 부가세를 포함해 8.25%이지만 2002년 5.5%, 2003년 2.75%로 낮아진 뒤 2004년엔 아예 없어진다. 이 사장은 "앞으로 3년간 제지업계의 키워드는 품질과 함께 가격경쟁력"이라고 단언했다. 신무림제지는 이러한 자체 판단에 기초해 3년동안 원가 8% 줄이기에 돌입했다. 일명 '2-3-3작전'이다. 종이 1t당 가격이 1백만원 안팎이므로 올해 2만원, 2002년 3만원, 2003년 3만원의 제조원가를 절감해 외국 대형업체와 정면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 작전의 골자다. 현재도 매출원가율이 79.8%로 국내업계에서 최고로 우량하지만 이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맞춘다는 것이 이 사장의 목표다. 이 사장은 올해 t당 제조원가를 이미 2만3천원 가량 낮췄다고 전했다. 진주 공장의 품목을 고급인쇄용지인 아트지 위주로 단순화하고 불필요한 경비 지출을 억제함으로써 가능했다. 이 사장은 "내년부터는 공장뿐 아니라 전 부문의 시스템 개혁을 통해 원가절감을 이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차입금도 대폭 줄여 원가 이외 부문에서의 경쟁력도 높이기로 했다. 신무림제지는 올해 4백억원의 차입금을 순상환했으며 내년엔 3백20억원을 줄일 예정이다. 현재 2천억원을 웃도는 차입금을 2003년 말께 1천억원 수준으로 감축키로 했다. 이렇게 될 경우 올해 매출 4천억원, 경상이익 2백억원의 신무림제지가 2003년이면 매출 5천억원, 경상이익 3백억원의 초우량기업이 될 것이라고 회사측은 전망했다. 무림제지의 CEO이기도 한 이 사장은 두 회사의 밑그림을 '고급제지 전문회사'로 그리고 있다. 신무림제지의 경우 인쇄용지중 부가가치가 낮은 종이는 가급적 생산을 자제하고 고급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복사용지는 생산을 줄이고 비싼 화보지와 컬러인쇄지 등을 확대한다는 얘기다. 무림제지도 현재 6 대 4 정도인 특수지와 인쇄용지 비중을 내년 말까지 9 대 1로 특수지 비중을 대폭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내년에 특수지 부문에 과감한 설비투자를 준비 중이다. 이 사장은 "제지산업분야에서 과거와 같은 폭발적 성장세는 사실상 끝난 만큼 이제는 품질로 승부하는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은 "2004년 이후 대형 외국업체의 국내시장 진출로 제지업계의 재편이 진행된다면 그 중심엔 신무림제지가 서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 ----------------------------------------------------------------- < 약력 > 1945년 5월7일 서울생 용산고.연세대 상대 졸업 1970년 RORC 중위 예편 경력 = 제일은행, 오리엔탈공업, 옥포기업(아프리카 가봉 근무), 신무림제지 기획실장, 영업본부장, 이사, 전무, 대표이사 사장(현재), 강원대 제지학과 겸임교수 취미 = 연식정구(용산고시절 정식선수) 골프(구력 15년, 핸디캡 20) 등산 마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