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기타를 배우기 위해 얼마전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찾은 유학생 백모씨(36).그는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대가(大家)를 만난다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서 그의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져 갔다. 강의 수준에 실망한게 아니었다. 문제는 언어였다. 3년여의 준비 끝에 유학길에 올랐기에 카스티야노(스페인 공식언어)는 어느 정도 자신한 그였다. 하지만 수업의 80% 이상이 바르셀로나가 속해 있는 카탈루냐주(州) 방언인 카탈란으로 진행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지난 18일 영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과 관련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관람거부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가 스페인에는 카스티야노로 더빙한 영화만 공급한다고 결정한 게 도화선이 됐다. 카탈루냐주의 정치 시민단체들은 맹렬히 이 회사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번 결정은 수백만 카탈루냐인과 카탈란을 무시하는 처사이므로 앞으로는 워너브라더스의 모든 영화를 거부하겠다'는 내용의 e메일과 엄포성 전화를 워너브라더스 본사를 향해 퍼부었다. 워너브라더스는 스페인 카탈루냐주에서 날아온 예상밖의 소식에 당황한 듯 지난 21일 공식적으로 사과성명을 냈다. 그리고는 카탈란 자막 처리가 된 필름을 오는 30일 개봉일에 앞서 카탈루냐에 배급키로 했다. 이곳 사람들은 이번 일을 카탈루냐인의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가 공식언어를 제치고 자신들의 언어로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게 됐으니 그럴만도 하다. 6백40만(99년 현재) 카탈루냐인의 이같은 자존심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해답은 경제력에 있다. 카탈루냐주는 스페인 전체의 16%에 불과한 인구로 국가 경제활동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수도인 마드리드(15%)를 제치고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으니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영화 '해리포터…'을 둘러싼 카탈루냐인과 워너브라더스의 나흘간의 에피소드는 경제가 뒷받침돼야 '떳떳하게 할 말하고 살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바르셀로나=홍성원 사회부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