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3·4분기 경제성장률 공식발표(22일)를 목전에 두고 정부 핵심 고위당국자들이 연이어 성장률을 미리 언급하면서 적지 않은 소동이 일고 있다. 21일 이기호 대통령 경제수석과 진념 부총리가 (3·4분기 성장률이) '1.5% 이상'이라고 떠벌려 주변을 당혹케 했다. 하루를 못참은 이들의 가벼운 ?입?은 한국은행의 공식발표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놓았다. 국고채 금리는 21일 0.13%포인트나 뛰었다. 국가 경제운용의 기본틀을 짜고 조율하는 핵심 당국자들이 시장을 휘저은 꼴이다. 한은은 애써 부인하고 있지만 한은의 추계결과를 이 수석이나 진 부총리가 먼저 봤을 것이란 것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진 부총리는 지난 8월에도 2·4분기 성장률을 발표 당일 조찬간담회에서 먼저 공개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물론 한은이 성장률 추계를 담당하고 있다고 해서 한은만이 발언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또 중요 수치를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에게 사전통보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경제지표는 공식발표 시점까지는 그 누구도 공식적으로는 모르고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민감한 시기의 민감한 수치를 자신이 먼저 들었다고 떠들고 다닌다면 시정(市井)의 우왕좌왕하는 투자자들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언론사도 엠바고라는 제도에 동의하고 있고 또 이를 지키는 것을 중요한 의무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미국의 상무부나 노동부는 주요 통계를 발표할 때 AP 블룸버그 등 주요 통신사 기자들을 전화선이 끊긴 방으로 모아놓고 자료를 배포한다. 기사작성을 마치면 미리 약속한 발표시간에 전화선을 연결해 기사를 송고하게 한다. 발표를 앞두고는 장관들이 통계수치를 언급하거나 언론에서 익명의 '고위 당국자'를 인용하지도 않는다.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을 인용한 보도만 홍수를 이룰 뿐이다. 정보가 곧 돈인 마당에 누가 어디서 무슨 얘기를 먼저 떠든다는 말인가. 업무상 먼저 알게 된 것을 그렇게도 앞장서 말하고 싶어 안달이라면 그런 사람은 당국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형규 경제부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