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독서대국이다. 웬만한 빌딩 상가엔 서점이 한두개쯤 꼭 들어서 있다. 장기불황에 허덕인다지만 대로 주변에도 서점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언제나 고객들로 붐빈다. 독서대국을 뒷받침하듯 한 유력 일간지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게재했다.조사에서 일반서적과 잡지를 포함한 종합독서율은 87%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하루 평균 독서시간은 31분으로 작년보다 2분이 늘어났다. 특히 10대 후반은 12분 늘어난 38분에 달해 가장 책을 많이 읽는 연령층으로 꼽혔다. 독서열기에 관한 한 일본에 한 수 접히고 들어가는 것으로 평가받아온 한국 측 시각에서 본다면 부러워할 현상이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본 조사결과는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독서율에서 잡지가 84%를 기록한데 반해 일반서적은 59%에 머물렀다.연간 16권 이상을 본다는 응답은 10대 후반이 13%로 평균치 9%를 훨씬 앞질렀지만 이들이 선호하는 건 '코믹'이라는 단행본 만화책이었다. 잡지도 결과는 비슷했다. 주간지 베스트 10중 6종은 유명인 사생활이나 신변잡기 책들이었다.월간지 역시 생활정보와 집안 꾸미기 등을 다룬 잡지가 베스트 10을 휩쓸었다. 독서시간은 늘었어도 쾌락과 호기심을 채워 줄 책이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 결과였다. 독서와 사고의 '인스턴트'화는 오피니언 리더 조사에서도 엿보였다. 3천1백99명의 응답자들이 꼽은 일본 최고의 오피니언 리더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지사였다. 2, 3위는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와 정치평론가 마스조에 요이치씨가 꼽혔다. 이를 두고 이 일간지는 TV 등 매스컴 노출 빈도가 높은 화제성 인물이 최우선으로 부각된 것같다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 하시즈메 다이자로 도쿄공업대 교수(사회학)는 "상업주의 오피니언이 득세하고 논리적 뒷받침이 배제된 채 TV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여론을 주도하는 오늘의 일본 세태는 어딘가 불안하다"고 꼬집고 있다. 만화 잡지가 독서 열풍을 이끌고 오피니언 리더가 TV의 인기 순위로 매겨지는 일본 사회의 속 모습은 한국이 따라하지 않는 게 옳을 역(逆) 벤치마킹의 또 다른 교재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