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산업은 한 나라의 기술과 산업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불린다. 여러 산업에 다용도로 쓰이는 부품.소재는 전.후방산업 연관효과가 크고 기초소재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금속은 전기.전자 기계 건설 등 산업 전반의 기초 소재이며 세라믹은 자동차 항공우주 에너지 환경.의료 등 미래 첨단산업의 필수 소재다. 부품.소재는 또 생산원가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최종 제품의 품질도 좌우해 전체 산업의 경쟁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정부는 향후 10년간 부품산업이 연평균 8.9% 성장, 제조업 전체의 성장률(5.3%)을 크게 앞지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재산업에서도 정밀화학 소재가 매년 9.2% 성장하고 고분자 신소재와 세라믹은 각각 20.7%와 16.4%의 높은 신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부품.소재산업은 산업의 디딤돌이라고 하기에는 국제 경쟁력이 너무나 취약한 상태다. 기술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뒤떨어져 있고 수입 의존도도 평균 30~40% 수준에 달하는게 현실이다. 무역수지 흑자를 까먹는 주범인 셈이다. 현재 기술 수준은 =설계기술 신제품개발 신기술응용 등 핵심 기술 수준이 선진국의 70%에도 못미치고 있다. 생산기술만 겨우 77.8% 수준에 이르고 있지만 선진국과의 경쟁은 꿈꾸기도 어렵다. 가격과 품질 경쟁력도 85% 전후에 머물고 있다. 기술의 해외 의존도는 더 심각하다. 조선기자재 부품과 정밀기계 부품은 수출비중이 각각 11.0%와 13.7%에 불과한데 수입 의존도는 각각 33.5%와 40.1%를 기록하고 있다. 특수 소재인 파인세라믹스의 경우 수출은 거의 없는데 수입 의존도는 50%를 넘고 있다. 또 수출비중이 48.3%로 비교적 높은 항공.우주부품도 수입 의존도가 무려 76.1%에 이르고 있다. 일반기계 부품과 전자 부품은 수.출입 비중이 모두 높아 수출이 수입을 유발하는 상황이다. 또 부품.소재를 생산하는 각종 장비는 대부분 선진국에서 사들여오는 형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보다 부품.소재 기업들이 기술개발 투자에 소극적이다. 기술표준원이 최근 종업원 1백명 이상의 부품.소재 업체를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연구개발(R&D) 투자액이 매출액의 2%를 밑도는 기업이 59.2%에 달했다. 특히 R&D 투자가 매출액의 1%도 안되는 기업이 전체의 3분의 1이나 됐다. 이에 비해 매출액의 5% 이상을 R&D에 투자하는 기업은 12.2%에 그쳤다. 국내 부품.소재 기업 규모가 지나치게 영세한 것도 문제다. 세계 최대 자동차부품 업체인 미국 델파이의 연간 매출(37조원)이 국내 자동차부품업계 총매출(19조원)의 2배 수준인데 반해 국내 자동차부품 업체의 98.6%가 중소기업이다. 전자부품산업도 중소기업 비중이 97.4%나 되며 철도차량 부품과 정밀기기 부품의 경우 50명 미만의 소기업이 무려 93.1%와 91.4%를 점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 자동차부품 업체들 가운데 5백70개사(65.9%)가 단 하나의 대기업에 납품하는 등 특정 수요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속(專屬) 거래관계도 부품.소재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지적된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