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밤 신라호텔 로비.중국에서 장쩌민 국가주석과 주룽지 총리 등을 만난 뒤 곧바로 전세기를 타고 서울로 날아온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회장.그는 다부진 체격의 보디가드 5∼6명에 에워싸여 있었다. 화환을 들고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도열했고…. "미스터 체어맨!"이라며 다가가자 루빈 회장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기자임을 밝히며 인터뷰를 청하는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오 노"라며 손을 크게 내저었다. 경호원들은 '조용히 그러나 억세게' 기자의 양팔을 잡아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였다. 준비했던 질문지는 경호원이 잽싸게 낚아채 갔다. 공식일정이 시작된 23일 오전 8시30분.예정보다 20분이나 빨리 진념 부총리의 은행회관 집무실을 방문한 루빈 회장은 40분간 진 부총리와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루빈 회장은 씨티은행이 외환은행 카드사업 인수를 포기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한국에 대한 신규 투자는 당분간 보류할 것이란 뜻을 전달했다. 이근영 금감위원장과의 면담 약속은 미국 씨티그룹으로부터 갑작스런 컨퍼런스콜(Conference Call)을 받고 일방적으로 취소시켰다. 이어 약 10분간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를 만났고 오후엔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한 뒤 곧바로 전세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 머무른 스무 시간 동안 대통령을 포함해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두 만났다. 주요그룹 회장들과의 오찬도 있었다. 지난 66년 월가의 투자금융회사인 골드만 삭스에 입사해 공동 회장에 오르기까지 26년간을 증권인으로 명성을 날린 루빈 회장.지난 95년 미국의 70번째 재무장관으로 취임한 그는 97∼98년 발생한 아시아 금융위기를 관리했던 책임자이기도 했다. 미국의 고금리정책을 주도한 탓에 개도국 외환대란의 기획가냐 소방수냐는 논란을 부르기도 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루빈 일행의 강압적인 자세는 테러사건 때문이었을까,아니면 외환위기에 대한 아시아권의 논란을 의식해서일까. 루빈 장관을 따라다닌 스무 시간.깡마른 체구의 루빈 회장에게서 미국 금융의 냉정함이 느껴졌다. 유영석 경제부 기자 yooys@hankyung.com